매일신문

[야고부] 행복한 은퇴

회식 때 흔히 하는 선창으로 '구구팔팔'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의미다. 비슷한 것으로 '팔팔구구이삼사'도 있다. '팔팔하게 99세까지 살다 이틀 아프고 사흘째 되는 날 죽으면 최고로 복 많은 사람'이란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평균수명이 가파르게 올라가면서 인생 대사의 하나였던 '환갑잔치'는 어느 결에 사라졌다. '칠순잔치'도 남세스럽다며 손사래 치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米壽(88세)잔치' 정도는 돼야 부끄럽지 않다 할 만큼 우리 의식이 달라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5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은 78.5세(남 75.1, 여 85.5)로 OECD 30개 회원국 중 21위다. 최장수국 일본(82)보다는 뒤지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의 고령화 속도를 볼 때 평균 수명 80세 진입도 시간문제다.

이에 따라 은퇴 후 30, 40년간의 삶이 우리네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처 준비하지도 못한 사이 우리 앞에 불쑥 다가선 고령화 사회! 자식 교육만 잘 시키면 그럭저럭 노후 문제가 해결됐던 시대는 지나갔다. 자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넣고 자기 노후는 또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지금의 부모 세대로선 앞날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변변한 취미도, 자아계발도 제대로 일군 것이 없다.

'아름다운 가게'로 널리 알려진 희망제작소가 최근 퇴직자들을 위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행복설계 아카데미'를 출범시켜 눈길을 끈다. 삶의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퇴직자들을 비영리단체 활동에 참여하도록 이끎으로써 개인적 성취와 함께 새로운 시민사회문화를 일구어가는 해피 시니어 프로젝트다.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의 저자 고든 리빙스턴은 말했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돈과 친구와 건강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며 의미이다'라고 말할 만한 그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미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1946~1964년 출생)는 정년을 '행복한 은퇴(happy retire)'로, 정년 후를 '여분의 삶(extra period)'으로 여긴다고 한다. 은퇴 후에 그간 하지 못했던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제2, 제3의 삶을 개척해 간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노인이 나라의 미래'가 되어가는 시대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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