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럽아트순례] (하)베니스 비엔날레

지난 6월 10일 '베니스 비엔날레'가 막을 올리고 약 5개월(~11월 21일까지)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원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베니스는 19세기의 선착장을 개조한 아르스날레, 77개 국가관이 위치한 카스텔로 지아르디니(공원), 그 외 도시 여러 곳에서 열리는 특별전으로 구성된 세계 최고 미술축제를 보려고 몰려든 인파로 더욱 붐빈다.

미국인 총감독 로버트 스토(R. Storr)가 내세운 '감각으로 생각하기-정신으로 느끼기: 현재 시제의 미술'이란 타이틀은 플라톤 이후 서구 세계를 지배해 온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해체적 접근을 의미한다. 정신과 신체, 이성과 감성 같은 항구적인 대립을 극복하는 예술적 대안을 담론화한다는 총감독의 의도는 무엇보다도 '관객을 위한 축제'로 요약된다.

지아르디니 내 제1기획전시관인 이탈리아관 참여작가 중 상당수는 1980, 199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작가들로, 게르하르트 리히터, 지그마르 폴케, 엘스워스 켈리, 솔 르비트 등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는 미술, 그리고 대중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비엔날레를 지향한다는 총감독의 신념은 한편으로는 거장들을 내세우는 제도권 미술관 전시와 차별성이 없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이 유명작가들의 회화와 조각은 신진작가들의 작업과 한 공간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예로 철학자 루소의 '에밀'에서 영향을 받아 자연과 인간 사이의 동화되기 힘든 관계를 강조하는 모슬리(Joshua Mosley)의 영상작업, 소외된 자들을 위한 이상적인 도시건축을 꿈꾸는 일군의 브라질 작가들이 펼치는 '모린호 프로젝트(Morrinho Project)' 등을 들 수 있다.

동유럽, 터키, 중국 작가들의 약진이 돋보이는 아르스날레 전시관에서는 영상·사진·디지털 애니메이션·설치 등 다양한 표현 양식이 혼재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내며 전시장 입구를 점유하는 부볼리(Luca Buvoli)의 '삼색 벡터', 진동장치를 이용해 비행기가 고층빌딩을 향해 돌진하는 9·11 테러 당시의 뉴욕을 재현한 게인즈(Charles Gaines)의 작업, 그리고 천장에 매달린 물음표가 프린트된 큰 풍선과 비디오를 통해 개인과 공공영역 사이의 상충하는 관계를 탐색한 일본작가 모리(Hiroharu Mori)의 '상공에서의 위장 질문'이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다.

한편, 총감독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마련한 아프리카 특별전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마치 하나의 국가인양 '아프리카관'으로 몰았다는 지적을 받기는 하지만, 그동안 소외되었던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21세기 국제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 기회를 마련한 점은 긍정적이다.

'체크리스트-르완다 팝'이란 주제로 아프리카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선보였다. '에이즈에 대항하여 노래하는 아프리카'란 테마로 작업하는 말리의 사진작가 시디베(Malick Sidibe)가 개막식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아 이 특별전에 의미를 실어주었다.

각 나라 커미셔너의 소관에 따라 전시의 성격이 결정되는 국가관 전시를 '감성으로 사고하고 이성으로 느끼라'는 비엔날레 주제와 연결시키기는 힘들다. 독창적인 기획력에 의해 작가 프로모션이 실현되는 국가관 전시를 통해 비엔날레의 경쟁력이 형성되는데, 이번에는 단일 작가를 선정한 국가관이 선전하고 있다.

이형구의 의사고고학적 작업 'The Homo Species'을 통해 '선택과 집중'이란 공간 연출을 한 한국관 전시는 히로시마 전폭의 기록을 분산되게 설치한 바로 옆 일본관 전시와 비교된다. 프랑스관은 칼(Sophie Calle)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구성된 영상작업을 선보여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잘 지내요'란 상투적인 문구를 남기고 이별을 통보한 남자친구의 편지를 각양각층의 여성들에게 보내 다양한 반응을 얻는 과정을 통해 예술이 지닌 소통과 치유의 문제를 부각시킨 작업이다.

작은 궁전 '팔라조 팔롬보 포사티'를 개조한 공간에서 열린 '공명'이란 주제의 이우환 전, '산 갈로 성당'의 성화가 놓인 자리에 3개의 스크린을 설치하여 '해변이 없는 바다'를 선보인 빌 비올라 전 등은 비엔날레와 제휴한 민간단체나 미술재단이 기획한 우수한 특별전의 예이다.

미술사적 회고에 집중했다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번 비엔날레에 누가 대상을 수상할지는 행사 마지막에 알게 된다. 비엔날레는 각 나라의 예술가들이 정치·사회적 불평등을 뛰어넘어 각자 서로 자주성을 존중하고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소통과 교류의 장이다.

이 국제적 행사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미술시장의 상업지상주의와 무관하게 글로벌 문화의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는 실천적 문화행동주의의 실험실로 남기를 기대한다.

박소영(미술평론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