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을 찾아가는 길은 멀었다. 충청북도 옥천군 하계리 40번지. 잠시 주춤했던 비가 다시 내린다. 모두 우산을 들고 정지용이 노래한 실개천 위 다리를 건너 지용의 집을 찾았다. 대문 앞에는 지용의 가 돌에 새겨져 있었다. 지용은 "나는 소년적 고독하고 슬프고 원통한 기억이 진저리가 나도록 싫어진다."고 회고한 바 있다. 4대 독자로서 느껴야 했던 숙명적 고독감과 부친의 방랑과 실패, 가난 등으로 어린 지용은 불행했다. 어린 시절 고독과 빈곤 속에 성장한 지용은 현실과는 다른 아름다운 꿈과 동경의 내면세계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 이야기 지줄대는 /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중략) //하늘에는 성근별,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전문)
가 그리는 풍경은 무척 아름답다. 고독과 빈곤 속에 살았던 지용의 현실적인 시선 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울음을 우는 곳이지만 지용이 살았던 일제 강점기의 그 참혹한 시간을 그리기에는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엷은 졸음에 겨운 아버지, 파란 하늘빛, 사철 발 벗은 아내,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 그렇다. 지용은 에서 본질적인 의미의 '향수'를 그렸는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상적인 풍경. 하지만 그곳도 역시 '알 수도 없는 모래성'이고 '서리 까마귀 우는 초라한 지붕'이 있는 곳일 뿐이다. 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묻혀 버렸지만 지용의 내면은 여전히 어둡다.
작은 사립문을 통해 생가 안으로 들어섰다. 마주보고 있는 두 채의 아담한 초가집, 박덩굴이 올라가는 낮은 돌담, 거기에는 지난날 지용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실 정지용은 1988년 해금되기 전까지 우리의 공식적인 문학사에서 지워졌던 인물이다. 지용은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 우리 시문학사의 근본적 흐름을 바꿔놓은 사람이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해방전후까지 문단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정지용은 한국전쟁 초기,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세상은 사라진 그를 두고 좌익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은 물론, 월북하였다는 허위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3차 이산가족 상봉현장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북한에 살고 있던 정지용의 셋째 아들이 상봉 대상자에 지용을 포함시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월북했다는 정지용의 흔적은 북에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지용은 어디에선가 '산중에 冊曆도 없이 三冬이 하이얗(정지용 부분)'게 인동차를 마시며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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