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포럼] 韓·中 수교 15년 무엇을 남겼나

문득 오래전의 대화가 생각났다.

"어디 사람이라고요?" "한국에서 왔는데요." "어디요?" "남조선이요." "아~ 남조선! 이봐, 이봐, 남조선사람이래!" 이윽고 주변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필자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동물원의 원숭이로 변하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이젠 중국의 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한국 연예인의 사진이나 한글간판,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한국가요로 인해 隔世之感(격세지감)을 느낄 때가 있다. 지난 24일로 한·중 수교는 15주년을 맞았다.

수교 당시 13만 명에 불과하던 한·중 간의 인적교류는 작년 집계로 48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제 중국의 각 대학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에까지 넘쳐나는 한국학생들은 앞으로의 한·중 동반 관계가 더욱더 밀접하게 될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전망을 내놓게 한다.

1992년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의 GDP규모는 각각 2.7배와 5.5배의 성장을 기록했다. 2004년부터 중국은 한국에 있어 최대교역국이 되었으며, 수교 당시 교역액 63억 달러에 불과하던 그 수량이 작년에는 1천180억 달러를 기록하여 18.7배의 성장을 보였다.

무역수지 면에서 보면 수교 당시 대중국교역에 있어 10억 7천만 달러 적자를 보이던 것이 지난해 연말 집계로 209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였으니 변해도 한참 변한 상황이다. 바꿔 말해 對中(대중) 무역수지 흑자는 對日(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상쇄하는 규모로서 전체 무역흑자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지난 15년 동안, 한국은 중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아 많은 기업이 그 생명주기를 연장시켰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도 산재해 있다. 무역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2005년 대중 무역흑자가 232억 7천만 달러로 최고조에 도달했다가 최근 점차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한다.

우리 수출의 효자노릇을 하던 반도체 등의 중국 내 생산이 점차 증가하고 해당 품목의 대중 수출은 감소하고 있는 것도 그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기술은 50% 이상의 분야에서 한국을 이미 추월했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고, 그것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실이다.

세계 500대 기업 순위만 봐도, 2000년도 기준 한국이 12개, 중국이 10개로 한국이 다소 앞섰으나 현재는 한국은 14개로 소폭 증가한 반면, 중국은 24개로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 중국은 한국에 삼파(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라는 것이 있었다.

바로 철강, 조선, 축구를 뜻하는 것으로, 한국을 따라잡지 못하는 세 가지 분야라는 의미였다. 이미 철강산업은 한국을 위협하고 있고, 세계 30대 造船(조선)기업의 숫자에서도 중국은 이제 한국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競爭優位(경쟁우위)는 축구뿐이란 말인가?

중국에서 대구 출신의 기업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비싼 임금과 중간 수준의 생산성, 강성 노조와 유연성 없는 규제를 견디다 못해 중국으로 이주한 기업들이다. 이처럼 지난 몇 년간은 생산기지의 중국이전을 통해 꺼져가는 불씨를 겨우 살려냈으나 최근 중국정부의 이전가격조사 강화, 노동법개정, 부가가치세 환급 기준 하향조정 등 각종 법규의 변화는 제조업의 중국현지 생존을 다시 어렵게 하고 있다.

이제 생산코스트의 격차를 이용한 수직적 분업구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왔다. 다행히 우리에겐 아시아 최고 수준의 물류 인프라와 오랜 시장경제 경험의 노하우 축적, 앞선 브랜드자산과 디자인 등의 서비스 자산이 있다. 중국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우리만의 자산으로 공생관계를 형성하는 것만이 한·중 경협의 장래라고 단언한다.

수교 20주년이 되는 2012년에는 양국의 교역량이 2천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시점에는 수입이 수출을 얼마나 상회할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변화될지,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중국기업이 진출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이제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중국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이 앞으로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느냐, 아니면 변방의 소국으로 비치느냐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손상범(영남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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