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은 복합적이었지만 잘난 녀석들은 디자인을 어떻게 설득하고 마무리하는지 무척 궁금해서이다. 당시 학위는 뒷전이고 디자인 현장에 취업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대학시절 대부분의 전공 참고자료는 일본에서 출판되는 서적들이 대부분인지라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다.
책에서만 감동받았던 디자인의 실체를 직접 보아야겠고 그 디자인을 제작한 디자이너들을 만나기 위해 리스트도 뽑았다. 취업하고 싶었던 디자인 회사도 몇 군데 골라 우선 편지를 보냈다. 속마음과는 달리 '월급 필요 없으니 함께 일만 하게 해달라'고….
얼마간의 기다림이 지나고 몇 번의 인터뷰가 있었으나 인연은 쉽사리 이어지지 않았다. 나 자신의 준비부족도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쉽사리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어느날 별이 떴다. 너무나 취업하고 싶었던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해 보자는 연락이 왔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그 회사가 한국 대그룹의 CI디자인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한국의 디자이너가 필요하던 차 몇 달 전에 인터뷰한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그 후 참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기업의 리서치 자료를 기초로 해서 아이디어를 잡을 때 그 치밀한 프로세스 가운데의 우연성, 냉정한 자료에 대한 엉뚱한 감각과 유희적 접근, 온탕과 냉탕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우나식 방법론은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터트렸다.
디자인 현장에서 스치는 미세한 공기와 감각의 떨림 등은 디자인의 혼으로 진화되었고 결국 디자인은 현장에서 눈을 뜨고 현장에서 눈을 감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현장체험은 디자인이라는 괴물에 상상력을 달게 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젠 이러한 모든 경험을 토대로 학생들과 토론축제를 즐긴다. 어느 한 학생에게 '너는 데비 캅슨이니?'라고 질문하면 '아니오 저는 데비 캅슨이 아니고 저는 전데요.'라고 말하기를 기대한다. 당연한 얘기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디자인 교육 현장은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대부분의 학생 작품들과 생각들은 계속 닮아가고 있고 집단안심주의로 무장되고 있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학생 때는 '디자인(Design)'에 올인하지 말고 '디자이닝(Designing)' 그 자체에 무게감을 둘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완성되는 또는 완성된 '디자인'보다는 '이럴 수도 있는' '그렇게도 될 수 있는' 즉,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만들어 보자는 얘기이다. 결국 디자인의 주체는 인간이요 자기자신이기 때문이다.
박병철(대구대 조형예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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