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월 가면… '단종애사'에 흠뻑 젖는다

여름의 끝자락이다. 작열하던 햇살도 쏟아지는 빗줄기에 힘을 잃었다. 그래도 주말엔 어김없이 떠나고 싶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여름을 추억하기 위해서라도.

떠나고 싶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영월이 생각났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단종이 세상과 떨어져 유배된 곳이 영월이다. 그때 영월은 단종에게 창살없는 감옥과 다를 바 없었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단종애사'의 무대도 영월이다. 영월 서강에 떠있는 섬, 청령포는 아름답다. 강건너에서 청령포를 바라보면 단종의 비애가 절로 느껴진다.

그래선가 영월은 여전히 고적한 땅이다. 4차로 국도 등 여러 갈래 길이 뚫리면서 가는 길이 수월해졌지만 영월에 들어서면 깊은 오지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선가 영월은 떠나고 싶을 때 서슴없이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사람들의 발길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에 영월은 자연과 닮았다.

영월읍을 가로지르는 두 가닥의 강줄기를 따라가면 영월의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정선 아우라지를 지나 온 강줄기가 동강이다. 동강은 '어라연'에서 높은 산들을 굽이굽이 돌면서 중국의 계림과 견줄 만한 비경을 빚어낸다. 어라연은 3개의 소(沼)와 그 사이에 솟아있는 기이한 바위,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동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고 있다. 동강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래프팅보다는 어라연트레킹이 더 낫다.

영월에는 동강뿐만 아니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서강'도 있다. 서강의 원래 이름은 평창강이지만 동강 때문에 서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흐르던 동강과 서강은 영월읍에서 비로소 하나로 만나 남한강으로 합쳐진다. 서강은 영월군 서면 옹정리에서부터 동강과 만나는 영월읍까지다.

물길이 험하고 풍경이 수려한 동강을 남성적인 '수강'이라고 한다면 서강은 물길이 순하고 부드러운 '암강'이다. 서강은 어라연 같은 웅장한 풍경을 빚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지막한 산들 사이를 휘돌고 오밀조밀한 산세와 어울리면서 들판을 감싸안으며 흐른다. 서강의 깊고 잔잔한 물줄기는 병풍처럼 펼쳐진 신선바위를 지나 선암마을을 휘감는다.

서강에서 가장 으뜸가는 풍경을 꼽으라면 '한반도지형'이다. 영월에서 제천방향으로 난 31번국도를 따라가면 '한반도지형'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서강은 선암마을에 이르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와 똑같은 지형을 빚어냈다. '한반도지형' 이정표에서 500여m 산길을 올라가면 눈앞에 한반도 모양의 장관이 펼쳐진다. 누군가 곳곳에 심어둔 무궁화도 새롭게 느껴졌다. 무궁화 삼천리와 한눈에 보이는 한반도를 눈에 담으면 낯선 외국에서 애국가를 들을 때와 같은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강을 낀 동쪽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절벽이다. 서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완만해지는 지형은 천상 '동고서저'형의 우리나라 지형을 빼다박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북쪽에 백두산이 보이고 오른쪽 귀퉁이에는 호미곶같이 튀어나온 곳도 있다.

이곳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은 서강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일반인들에게 최근 들어 알려지기 시작했다.

강줄기는 영월읍에 가까워지면서 선돌과 청령포로 흘러든다. 선돌(立石)은 70m의 장엄한 두 개의 바위가 만들어내는 한 폭의 동양화다. 전망대에 올라 선돌을 바라보면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두 손을 모으고 선돌 사이로 보이는 서강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소원을 빌어본다.

선돌 아래에는 '자라바위'가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선돌 아래에 있는 남애마을에서 장수가 태어났으나 전투에서 패하자 이곳에서 투신, 자라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영월의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 어울린 자연이다. 가는 곳마다 전설과 설화가 없는 곳이 없다. 영월에 가면 차근차근 옛이야기들을 찾아보는 것도 이 여름을 추억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글·사진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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