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자리를 만들자] ⑧취약계층 일자리-노인

대구 고령자 56만명중 31%만 '축복받은 실버'

▲ 대구 달성군 현풍면 대한노인회 취업센터 현풍 노인공동 작업장에는 10여 명의 노인들이 자동차 부품제조 작업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대구 달성군 현풍면 대한노인회 취업센터 현풍 노인공동 작업장에는 10여 명의 노인들이 자동차 부품제조 작업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나이 든 어르신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다.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부 직장을 가진 '축복받은 실버'들을 제외하곤 어르신들은 오늘도 일자리를 찾아 노인취업센터의 문을 두드린다.

▶이런 곳도 있지만…

지난 24일 대구 달성군 현풍면 대한노인회 취업센터 현풍 노인공동작업장. 50평 남짓한 내부에는 가마솥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혈기왕성한 10여 명의 노인들이 저마다 옷고름을 풀어헤친 채 자동차 부품 제조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평균연령은 72세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지. 여기서 번 돈으로 할망구한테 용돈을 주는데 어찌나 좋아하던지…." 곽정덕(78) 할아버지는 이마에 맺힌 땀을 간간이 훔치며 작업대에서 능숙하게 도색작업을 했다.

선반 위에서 절단작업을 하던 정칠순(81) 할머니는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을 누가 써주겠어? 여기서 일도 할 수 있고 용돈도 벌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이들은 평일 2교대로 4시간씩 일하면서 한 달 평균 25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얼핏 턱없이 적은 돈인 듯하지만 이곳의 노인들은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 비하면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현풍 공동작업장과 같은 곳은 극히 드물다. 제조업과 연계된 작업장으로 대구·경북에서 유일하다. 이마저도 대구·달성군취업지원센터, 달성군청 공무원들이 직접 달성군 내 공단 업체들을 설득해 어렵게 일거리를 구했다.

대구지방노동청이 이달 600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고작 60개 사업장이 고령자(55세 이상)를 채용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그나마 채용시기는 미정이라고 밝힌 업체가 대부분이어서 실제 채용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황창성 달성군 취업지원센터장은 "노인들이 충분히 젊은이들만큼 일을 척척 해낼 수 있는데도 기업들이 불량 우려 때문에 일거리를 잘 맡기지 않는다."면서 "일거리를 맡기 위해 3개월 동안 업체들을 설득했는데도 불량, 손실 등을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곤 했다."고 했다.

▶노인 일자리 턱없이 부족

"일은 하고 싶지만 자리가 있어야지."

지난 23일 대구 달서 시니어클럽. 50평 남짓한 사무실에 6명의 노인들이 상담을 받고 있고 전화벨이 쉴새없이 울렸다. 이석기(62·달서구 성당동) 씨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곳에 들러 '어디 일자리 없나?'고 직원에게 물었다.

"하루종일 집만 지키면 뭐해.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자주 들러야 일자리가 생기지."라며 "뭐든 시켜만 주면 좋겠다."고 했다.

'시니어클럽'(보건복지부 지정 노인후견기관)이나 노인회 취업지원센터,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 등에서 노인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상담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본사 기획탐사팀이 대구고용안정센터에 구직등록을 한 대구의 고령자(55세 이상) 수를 조사한 결과 올 7월 말 현재 3천667명이나 됐다. 2004년 한 해 동안 2천633명, 2005년 3천803명, 지난해는 4천818명으로 매년 증가세다.

류우하 달서 시니어클럽 관장은 "지난 현수막제작 사업 공고에서 기술자에 한해 지원을 받았는데도 10명 모집에 50명 이상의 지원자들이 몰렸다."면서 "별다른 기술이 필요없는 일자리 모집에는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고 했다. 일자리라고 해봐야 공공근로사업에 참가하거나 주유소 근무, 농촌 일손돕기, 교통지도, 골목청소, 종이가방접기 등이 대부분이다.

희망자에 비해 제대로 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조병옥 대한노인회 대구시 취업센터장은 "일자리는 얼마 없는데 기다리는 대기자 수가 워낙 많다."고 했다.

2005년 대구시 고령자(55세 이상) 인구는 56만 7천여 명. 이들 중 직업을 갖고 있는 선택받은 고령자는 고작 31%(17만 6천 명)에 불과하다. 이 통계는 1주 동안 1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실제 취업자 수는 훨씬 적다.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 취업지원3팀장 김규완 씨는 "보통 일주일에 200여 명의 고령자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기업들이 일본처럼 노인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획탐사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 노인들이 제일 원하는 직종은?

정답은 수위·경비직이다. 일이 힘들지 않고 근무시간이 일정하고 안정적인 직종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취업센터에 찾아오는 남성 고령자의 80% 이상이 수위·경비직을 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공공기관 경비직은 노인들 사이에서 '신이 내린 직장'으로 통한다.

임금이 일반 경비직보다 30%가량 많은데다 이미지도 괜찮기 때문이다. 일반 경비직이 80만~90만 원을 받는데 비해 공공기관 경비직은 130만 원 안팎을 받는 게 보통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올초 경비직 한 명을 뽑는데 55명이 몰려와 면접을 하는데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돈을 써서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지원자들이 부지기수여서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한 은행 지점장 출신인 김모(52) 씨는 얼마전 공공기관에 경비직 원서를 냈다가 고배를 마셨다. 화려한 경력이 오히려 독이 된 케이스다.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 한 관계자는 "은행 지점장, 대기업 간부, 교장·교감 출신이 찾아와 경비직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경비직에는 좋은 경력이 사측에서 부담을 느낄수 있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으로 수성구 등 부유촌 아파트 경비도 선호하는 직종이다. 부수입이 만만치 않고 상대적으로 주민들에게 적게 시달릴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주민들이 내놓은 가구, 폐지 등을 팔아 별도 수입을 챙길 수 있는게 장점이다.

김주성 (주)신천 용역도급업체 이사는 "공기관, 학교, 아파트 경비직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자리"라면서 "괜찮은 보수와 안정성의 장점 때문에 항상 지원자가 넘쳐난다."고 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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