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매물이 넘친다고 하더니 전세가 없네요."
올 가을 대구 수성구 범어동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직장인 박모(36)씨는 지난 주말 부동산 업소를 찾았다가 마땅한 전세집을 구하지 못해 연락처만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30평형대 아파트 전세 물건이 없는데다 몇개 나온 집들은 가격이 턱없이 높았기 때문.
박씨는 "부동산 경기가 바닥이라고 해 느긋한 마음으로 부동산 업소를 찾았는데 매물이 없어 깜짝 놀랐다."며 "가격도 한두달 전보다 2천만 원 이상 올라있었다."고 했다.
대구 지역 부동산 경기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수성구 '범어동' 분위기가 요즘 사뭇 달라지고 있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매수세가 움직이면서 중소형 전세를 중심으로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매매 거래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 부동산 업소들은 "범어동이 대구 아파트 경기를 이끌어온 만큼 범어동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아직 속단은 이르지만 이제 바닥을 쳤다는 매수 심리가 어느 정도 퍼지고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분위기 달라진 범어동
"영 끊어질 것 같던 문의 전화가 이달 들어 갑자기 늘면서 최근 오후만 되면 밧데리가 부족할 정도로 휴대폰이 울려댑니다."
범어네거리 인근 중개업소인 '부동산 하우스' 이성희 소장은 "30평형대 전세는 이달 들어 갑자기 매물이 소진되면서 품귀 현상과 함께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급매물을 중심으로 매매 거래도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 태왕 유성하이빌과 청구푸른마을 등 범어네거리 주변 30평형대 아파트의 경우 1억 5천만 원 아래로까지 떨어졌던 전세 가격이 매물이 소진되면서 최근 1억7천만 원 이상으로 급등했다.
범어동에서 시작된 중소형 전세 품귀 현상은 인근 지역으로까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올 봄 입주가 시작된 두산동 대우 트럼프의 경우 1억2천만 원까지 떨어졌던 30평형대 전세 가격이 1억6천만 원 이상으로 올랐지만 매물이 거의 사라졌으며 만촌동도 전세 품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만촌동 권오인 중개사는 "메트로 팔레스 30평형대 전세는 거의 매물이 사라진 상태며 가격도 거래가 없던 지난 달보다 500만~1천만 원 오른 상태"라며 "매수 문의가 늘고 있어 전세 가격은 더 오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개드는 바닥론
범어동 발 전세 품귀는 매매 거래로 이어지고 있다. 급매물 중심이지만 지난 '1.11 부동산 대책' 이후 끊어졌던 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것.
이성희 소장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30평형대는 2천만~3천만 원, 40평형대는 4천만~5천만 원 정도 떨어진 급매물 중심으로 매매 거래가 되고 있다."며 "지난 달 중순까지는 아무리 가격이 떨어진 급매물이라도 매수자가 없어 아예 거래가 없었다."고 했다.
달서구 용산 지역도 조금씩 거래가 살아나고 있다.
대우 부동산 정창국 소장은 "중소형 전세 물량은 지난 달부터 매물이 사라진 상태며 지금은 가격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며 "중소형 위주지만 급매물 중심으로 매수세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매수세 회복'이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전세 품귀는 '분양가 상한제'로 신규 분양 아파트 매수세가 사라지면서 전세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급매물 거래는 올 봄 이후 가격 하락을 기대하며 기다리던 대기 매수자들이 많고 이들 사이에서 '바닥론'이 확산되면서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또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데다 최근 정부가 침체된 지방 부동산 시장에 대해 수도권과 차별화된 정책을 펼 것이란 변화된 입장을 내보이면서 기대심리도 살아나고 있다.
◆분양 시장 및 타 지역은 아직도 안개속
그러나 '범어동' 분위기가 대구 전체로 이어지기에는 아직은 역부족.
신규 분양 시장의 경우 여전히 계약자를 찾아보기 어렵고 입주 물량이 많은 달서구 월배 등 일부 지역의 경우는 '역전세난'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분양 대행사 장백의 박영곤 대표는 "워낙 미분양이 많고 입주 물량도 만만치 않아 대구 지역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최악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올 가을 분양 대기 물량도 2만 가구를 넘어서고 있어 분양 시장이 살아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앞으로 부동산 시장의 지역별 차별화 현상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진우 부동산 114 대구·경북 지사장은 "올해와 내년까지 입주 물량이 대구 지역에서만 5만 가구에 이르고 있어 전체 시장이 활기를 띄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앞으로 공급 물량이나 주거선호도에 따라 전세나 매매 시장 모두 구·군이나 동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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