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첫 동네' 하면 대략 적막감, 낮게 떠있는 흰구름, 졸졸 흐르는 개울 등등을 떠올릴 터다. 칠곡 가산면 가산1리 북창마을은 그런 상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다. 멀미가 날 정도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팔공산 한티재를 넘어 다시 비포장길을 달리다 겨우 마을을 만나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니, 대구 가까이에 이런 오지 산골이 있었어요?" "정말 공기 한 번 좋군요.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저희 마을에는 시내버스가 하루 3번 들어오는데 기사분이 밤에는 주무시고 다음날 나간답니다. 그만큼 칠곡군 내에서 가장 자연이 잘 보존된 청정마을이지요.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마을을 소개하는 김인진(57) 이장의 표정에 자부심이 언뜻언뜻 묻어난다.
처서가 지난 뒤에도 도심에서는 연일 폭염이 이어지지만 산골은 벌써 가을 분위기가 난다. 1시간 거리지만 도시와는 적어도 3, 4℃ 정도 기온이 차이나는 듯하다. 경운기를 타고 골짜기 아래 옥수수밭으로 향하는 아이들도 시원한 골바람에 연방 환호성을 지른다. 잘 익은 놈만 골라 따넣은 망태기에는 행복이란 녀석도 어느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해가 떨어지자 꽤나 선선하다. 애당초 24절기를 도시에 맞춰 생각하는 게 잘못이다. 민박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다시 마을회관에 모인 체험객들은 저마다 맛본 동네 할머니들의 솜씨를 자랑하기 바쁘다.
"우리 집은 청정채소랑 된장찌개를 주셨는데 꿀맛이었어요." "이거 참 죄송하네요. 저희 집은 닭백숙 먹었는데…."
땅거미가 내려앉은 동네 입구에서 새끼꼬기가 진행되자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나와 손수 시범을 보이신다. "다 떠나고 이젠 20여 집만 남은 산골에 간만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니 기분이 참 좋구먼. 이게 사람 사는 모양 아닌가."
곧이어 장작더미에 불이 붙고 아이들은 불장난에, 새끼줄넘기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알맞게 익은 감자와 막걸리 한 잔은 밤늦도록 이어지고 아이들은 처음 먹어본 메뚜기 튀김에 익숙해져 간다. 짧은 산촌의 밤이 아쉽기만 하다.
이튿날 아침, 트럭을 타고 찾아간 비닐하우스에서는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토마토들이 방긋 웃고 있다. 밭주인인 새마을지도자 박규봉(50) 씨의 얼굴을 닮았다. "제가 열심히 키운 것이니 마음 놓고 드세요. 제철 과일이 바로 보약 아닙니까?"
5kg은 됨직한 한 망태기가 3천 원이라니? 저희 더 따면 안될까요? 체험객들은 더 못 따서 아쉽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땀을 식히러 찾은 계곡에선 어른아이가 따로 없다. 모두 한데 어울려 물싸움을 하고 동심으로 돌아간다. 옷이야 흠뻑 젖었지만 가슴에는 시원한 추억이 쌓인다.
"엄마, 다음에는 아빠도 꼭 함께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 내년 여름에는 이 마을에 피서 오자꾸나?" "아니, 가을에 오면 밤도 따고 사과도 먹을 수 있잖아요." "욘석아, 농촌이 그렇게 좋니? 하하하."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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