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깡디드'의 교훈

'순진하다'는 뜻의 프랑스어 단어 '깡디드(candide)'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 있다. 그는 낙천주의자 스승 밑에서 장래에 대해 아무런 걱정도 없이 그럭저럭 살다 성주인 남작의 딸과 사랑을 속삭여 성에서 쫓겨난다. 그후 온갖 풍상에다 우연한 호사까지 누리며 온 세상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다 역시 우연에 의한 엄청난 고통으로 얼굴까지도 흉측하게 변한 애인과 스승을 만나게 되어 한곳에 정착하여 살게 된다. 그러나 몇 년을 그렇게 살다보니 이제 지루해졌다. 모두들 한 마디씩 불평을 늘어놓자 깡디드는 말한다. "그래도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죠."

프랑스 지성 중 한 명이자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의 소설 '깡디드'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낙관론을 천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염세주의를 외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볼테르의 실용주의를 표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럽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1755년 11월 리스본에 대지진이 있었고 이후 프랑스·아프리카와 독일에 연쇄지진으로 이어져 유럽사회는 극심한 공포를 겪는다. 1756년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 전쟁은 동맹관계에 따라 유럽을 두 진영으로 갈라놓으며 유럽 전체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전쟁의 참화는 유럽 민중들의 극심한 고통을 야기했고, 참살과 강간 등 반인륜적 횡포가 성행했다.

실제 사건을 담은 소설 '깡디드'는 이러한 온갖 재난을 겪고 있던 유럽인들에게, 현실 문제를 감추고 사람들로 하여금 지적 만족감에 빠지게 하는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대한 허구성을 설파하며 삶에 대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남한의 대선을 앞둔 남북 정상회담, 집중호우로 인한 북한의 수해 및 한반도의 아열대 기후, 세계 증시 폭락과 폭등의 널뛰기 장, 연이어 터지는 학력위조 파문, 감세로 인해 좋아하기는커녕 뒷맛이 개운치 않은 소득세법 개정.

후텁지근했던 여름날, 상식을 벗어나거나 현재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정치·경제·문화·환경 등, 우리 주변 갖가지 모순적이고 혼란스런 형편 속에서 가을을 맞이한다. 그래도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 정원을 가꾸는데, 우리의 희망은 항상 여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백찬욱 (영남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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