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무더운 여름철을 이기는 지혜를 우리 선조들은 많이 안 것 같다. 그 중에 하나가 여름철의 별미, 콩국수. 쌀이 많지 않던 6~70년대의 주식은 밀가루였으니 오이채를 고명으로 한 냉국수나 콩국수를 질리도록 먹었다. 그러나 이젠 별미식이 되어버린 콩국수. 마트에서 일회용 즉석 콩국을 사서 국수에 말아 먹으며 그 옛날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콩국수를 떠올려 본다. 얼마나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집집마다 텃밭엔 콩밭이 있었다. 콩은 가뭄에도 끄떡없고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식물이다. 콩잎을 들춰보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콩이 열렸다.
"콩이 마이 열리겠는 걸..." 곁순이 많이 올라오면 콩이 많이 열리니 콩잎을 들춰보던 할머니가 기분 좋은 말씀을 하셨다. 그 순간, '아... 올 여름도 콩국수를 엄청나게 먹겠구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비릿한 콩국수가 비위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텃밭엔 쥐눈이콩과 메주콩이 심어졌다. 쥐눈이콩은 크기가 작고 까만 반면에 메주콩은 굵고 희었다. 이른 봄에는 완두콩을 심고 여름에 수확해서 먹었다. 풋콩을 까서 밥 지을 때 넣으면 파란색이 되어 비록 보리밥이지만 콩밥을 먹는 여름철이 너무나 좋았다.
할머니는 완두콩이 떨어질만 하면 강낭콩을 심었다. 강낭콩은 떡을 해먹거나 죽을 끓일 때 요긴한 재료로 사용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감자를 캐낸 텃밭엔 흰콩과 검정콩을 또 심었다. 흰콩은 메주를 쑬 예정이고 검정콩은 밥에 넣거나 콩나물도 한 번씩 길러 먹기도 했다.
이러니 할머니는 일년내내 콩과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알뜰살뜰 키운 콩으로 손자들 가을 소풍이라도 가게 되면 검정콩을 볶아서 주전부리로 넣어주기도 했다. 볶은 콩은 그래도 고소한 구석이 있어서 주전부리로는 좋았다.
할머니는 대청마루에 앉아 맷돌을 돌렸다. 자그락자그락 돌아가는 맷돌을 보고 있으면,
'오늘 저녁도 콩국수를 먹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앞설 뿐이었다.
커다란 맷돌에 불린 콩을 삶아 한 숟가락씩 떠서 윗 구멍에 넣고는 맷돌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면 하얀 콩국물이 맷돌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맷돌돌리기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맷돌 돌리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얼굴이 뻘개지면서 힘으로 돌린다고 돌려지는 게 아니었다. 어른 힘으로 리듬을 타서 돌려야 하는 것인지 그 때는 알 수가 없었다. 내 손위로 할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닿자 맷돌은 슬그덩슬그덩거리며 돌기 시작했다.
콩국물이 나오면 면보자기에 담아서 찌꺼기를 걸러내고 뽀얀 국물을 준비해두었다. 그 다음엔 밀가루 반죽에다 칼로 반죽을 썰어, 이른바 칼국수를 삶아 사리를 만들고 오이채 썰어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시원한 냉콩국수를 만들었다.
어떤 때엔 뽕나무에서 딴 오디를 고명으로 넣기도 했다. 어머니가 제안한 고명이었다.
"오디는 나이 드신 분들 눈이 밝아져 노안에 좋다"는 지론이었다. 오디가 들어간 콩국수는 오디의 달콤함 때문에 콩국수를 먹는 일이 즐거운 일이 되기도 했다.
콩국수는 여름철에 단백질을 보충하고 시원한 입맛까지 돋울 수 있는 보양식이다. 한의사들은 양질의 단백질인 콩과 성질이 차면서 열을 내려주는 밀의 조화 때문에 여름철 음식으로 콩국수를 권장하기도 했다. 거기다가 콩과 들깨를 갈아 넣거나 잣, 땅콩까지 곁들이면 고소하고 영양 만점인 콩국수 별식이 되었다.
특히 흰콩은 다섯가지 장을 보호하고 혈액순환에 좋으며 장과 위를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콩의 불포화지방산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리고 성인병 예방에 좋으며 비타민 E는 피부미용과 노화방지에 효과적이란다. 식물성 에스트로겐 성분도 많아 폐경기 여성들에게 좋은 식품이다.
콩국수 만드는 일 하나만으로도 온 정성을 다하신 할머니의 콩국수를 이제 어디서 맛볼 수 있을까? 그 때 투덜거리지 말고 많이 먹어둘 것을 하고 후회한들 어쩌랴...
일연선사가 쓴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군 고로면에 있는 인각사엘 들렀다가 군위의 별미' 쥐눈이콩국수' 먹으러 가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검은'쥐눈이콩'을 갈아서 살짝 녹색 빛깔스러운 진하고 고소한 콩국물에다 콩가루를 알맞게 섞어 뽑은 쫄깃한 면발. 더군다나 직접 재배한 100% 국산재료를 사용한다하니 할머니의 손맛처럼 군위에서 쥐눈이 콩국수 한 그릇 먹는 음식 체험도 좋겠다. 송도식당 054-383-1321.
김경호 (아이눈체험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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