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넷 세상 21세기 신문고

인터넷 고발 문화가 확대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경찰서까지 찾아가는 것이 귀찮아서 속앓이만 하던 소액 피해자들이 인터넷에서 연대해 피의자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각종 커뮤니티에 반인륜 범죄나 부정부패 관련 글을 올려 이른바 '사이버 인민재판'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피의자 권리가 사라지고, 근거없는 루머에 의존한 사이버 테러가 자행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 인터넷으로 신고한다.

인터넷 쇼핑몰 거래 규모는 1조 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피해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네티즌들이 직접 인터넷 사기 피의자를 공개 수배, 공동 대응하는 등 인터넷 사기 피해자 사이트와 커뮤니티를 잇따라 개설하고 있다. 현재 개설된 이런 인터넷 고발사이트만 200여개에 이른다. 단순히 고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가 사기 피해를 막고 공동 대응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가장 활약이 돋보이는 사이트는 '더 치트'(www.thecheat.co.kr). 수년간 인터넷 사기 피해를 입은 한 대학생은 추가 피해를 막고 구매자 스스로 권리를 찾자는 뜻에서 사이트를 개설했다. 하루 20여 건의 피해 사례와 피의자 리스트 및 검거 소식 등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며, 피의자 이름과 수법까지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두었다. 의심나는 피의자의 이름만 검색하면 유사한 피해 사례가 줄줄이 뜬다. 개설 이후 접수된 피해 사례만 2만여 건에 이른다. 행여 피의자 이름을 몰라도 전화번호 하나만 검색해도 다른 피해자들을 모아 피의지 신원을 밝혀낼 정도. 신원이 드러난 피의자 중 일부는 "피해를 입으신 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금액을 모두 변제해 드릴테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라며 선처를 호소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수사 중인 경찰이 올린 글도 눈에 띈다. 한 경찰관은 "인터넷 물품사기 피의자 ○○○를 검거해 수사 중입니다. 여죄를 캐고 있으니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라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충남 연기경찰서는 지난 8일 100여건의 인터넷 사기를 저지른 김모(19) 씨를 검거했다. 지난 4월부터 피해자만 111명, 피해액 1600여만원에 달한다. 포터블미디어플레이어(PMP)나 휴대폰 등을 싸게 판다며 속여 주로 미성년자를 상대로 10만 원~50만 원 정도의 피해를 입혔다. 신고가 적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더 치트'에 피해 사실이 수십 건 올라오면서 경찰은 김 씨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성공했다.

지난달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국제 뇌물 고발 인터넷 사이트가 한 주에 수백 건의 고발이 접수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11일 개설한 사이트 '브라이브라인'(www.bribeline.org)가 그 것. 기업 투명성을 높이려는 다국적 기업들의 비영리 협회인 트레이스가 만든 것으로 각국 정부와 국영기업 등의 뇌물 요구를 신고하는 곳이다. 개설 열흘 만에 89개국에서 발생한 1천 건 이상의 신고를 접수했다. 익명으로 접속해 한국어, 영어 등 14개 언어 중 하나를 선택해 10개의 객관식 질문에 답하도록 돼 있다. 뇌물을 요구한 나라나 해당 인물의 소속이 어디인지 등을 질문하며, 뇌물 요구액은 최저 20달러 미만에서 최고 50만 달러 초과로 10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트레이스는 이 신고 사례들을 모아 나라별.부처별.산업별 뇌물 지도를 만들 계획이라고. 다국적 기업들은 이 지도를 활용해 뇌물 위험이 높은 국가나 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피하거나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이나 시'군'구청 홈페이지를 통한 신고도 활발하다. 하지만 대부분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다분히 개인적인 감정에 근거한 악성 루머인 경우도 많다. 대구경찰청 한 관계자는 "범죄 신고가 많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돈을 떼였다거나 소액 사기피해를 당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조직적 비리와 관련된 내용의 경우 여전히 근거없는 '~카더라'식 제보가 많다."며 "최근 들어 결정적인 인터넷 제보가 들어와서 사건을 해결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근거가 미약한 경우, 경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기는 힘들다.

◇ 마녀 사냥식 뭇매 때리기는 문제다.

디지털카메라와 컴퓨터만 갖추면 누구나 쉽게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부정부패를 신고할 수 있다. 범죄를 억제하고 경각심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무분별한 고발은 오히려 피의자 인권을 침해하거나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청은 네티즌의 집단 공격에 혼쭐이 났다. 구청 홈페이지 민원란에 올라온 사진 때문. 구청에서 홀몸노인에게 지원한 쌀에 벌레가 가득 차 있다는 사진이 올라온 즉시 이 사진은 각종 사이트로 확산됐고, 성난 네티즌들은 마포구청 홈페이지로 몰려가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하지만 쌀벌레는 쌀을 받은 노인이 장마철에 보관을 소홀히 해 생긴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사진을 올린 김모(37'여) 씨는 "옆집 할머니가 벌레가 가득한 쌀을 마당에 펼치길래 놀라 사진을 찍었는데 알고보니 오해였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6월 발생한 '개똥녀 사건'은 인터넷을 통한 대표적인 사생활 침해 사례. 한 20대 여성이 지하철 안에서 애완견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뻔뻔하게 내렸다는 내용의 글과 여성의 얼굴이 노출된 사진이 인터넷에 실렸다. 순식간에 각종 포털사이트로 확산된 이 글과 사진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고, '개똥녀'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 여성은 얼굴까지 공개됐으며, 재학 중으로 알려진 대학의 서버가 네티즌 공격으로 마비돼 인터넷 강의가 중단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왕따 동영상' 사건도 마찬가지. 경남 한 중학교에서 한 학생이 같은 반 친구를 괴롭히는 동영상을 찍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으며, 이 영상은 이른바 '왕따 동영상'으로 불리며 주요 포털사이트로 급속히 퍼졌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가해 학생들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등 신상 정보를 퍼뜨렸으며 학교에 대한 거센 비난도 퍼부었다. 결국 학교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숨진 교장의 유가족이 "인터넷에 유포된 정보를 진위 확인 없이 단정적'선정적으로 보도해 사태를 키웠다."며 MBC와 마산MBC, 취재기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고들은 숨진 교장의 아들 2명에게 2천 300만 원씩, 부인에게 3천 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은 채 언론에 사진을 배포하는 것은 초상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인권위는 지난 6월 20일 남편이 주차단속 요원을 다치게 하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인터넷에 실려 남편 인권이 침해됐다며 이모(36'여) 씨가 대전광역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진정에서 대전광역시장은 직원들에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인권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대전시청은 사건 발생 이틀 뒤 공보관실을 통해 최씨의 얼굴과 차량 번호판을 모자이크 처리없이 배포했다. 시청 측은 "사진 게재 여부는 해당 언론사의 판단이며, 포털사이트에는 사진을 제공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지만 인권위는 "최씨의 사전 동의없이 얼굴과 차량번호판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진을 기자단에게 배포한 점이 인정되며, 이는 초상권과 사생활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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