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평생 속일 수 있고,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그럴 듯해 보이는 말이지만 사실 세상은 그렇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았고, 그 거짓말이 오랜 시간 통했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실로 믿었던 명제들은 거짓임이 드러나는데 수백 년이 걸리거나 심지어는 천년이 넘는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다시 달라졌다. "진짜 그기 맞나?"로 시작된 의문은 "내는 이래 알고 있는데…."로 바뀌었고 블로그와 카페, UCC를 통해 검증 공방의 장을 펼쳤다. 사람들의 행적은 인터넷에 남았고, 의문을 가진 자는 그 행적을 뒤쫓아 참과 거짓을 가려냈다.
그만큼 살기도 힘들어졌다. 하늘 아래 완벽한 것이 어디 있으랴? 대충 거짓말로 떼우고 살던 사람들은 옷을 홀딱 벗고 '이게 내 모습이오.'하고 걸어나오든지 마치 세상사에 통달한 듯 인터넷이 없는 어느 곳엔가 칩거하는 수 밖에 없게 됐다. '심판자 인터넷'의 세상이 온 것이다.
◇ 안통한다, 꼼수
2007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거짓 학력 파문도 이런 맥락이다. '진실을 알고 싶다'고 외치는 네티즌들은 두 번의 거짓말을 용서치 않았다. 작곡가 주영훈 씨는 허위 학력 논란에 대해 갖가지 해명을 했지만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허위 학력에 대한 의혹 제기부터 재검증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진실을 갈구하는' 네티즌들이 주도했다. "동생의 학력이 잘못 기록됐다."는 최근 주장은 지난 5월 주 씨가 출연한 라디오 프로에서 해당 학교를 졸업했다고 시인한 멘트를 찾아냄으로써 쑥스러운 거짓말로 드러났다.
심형래 감독의 학력 위조 의혹도 일부 네티즌의 문제 제기에서 출발했다. 네티즌들은 고려대 교우회 홈페이지를 뒤져 포털사이트 기록된 심 씨의 고려대 식품공학과 및 대학원 졸업 사실이 거짓임을 밝혀냈다. 인터넷의 서치라이트가 등잔 밑까지 훑고 지나가는 형국이다보니 스스로 거짓의 띠를 끊으며 참회와 반성의 눈물을 흘리는 공인들도 생겨났다.
하얀 거짓말이든 빨간 거짓말이든 상관없다. 연예인의 성형 수술 여부, 나이 부풀리기 또는 줄이기 논란도 같은 흐름이다. 성형 연예인이 되려면 학창 시절 친구들과 사진 한 장 찍어서는 안되고, 졸업앨범은 기피 대상 1호가 돼야 한다. 거짓말을 하려면 세상 전부를 상대로 해야 한다. 미니홈피에 솔직한 심경을 적어 올려서도 안되고, 친구에게 쪽지글을 보내면서 추적의 실마리가 될 만한 단서를 흘려서는 안된다. 공인들의 거짓말을 발본색원하는 작업이 밝은 세상을 약속할런지 알 수 없지만 한동안 계속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 파헤친다, 각종 비리
지난 5월 28일 경주경찰서 홈페이지에는 하루에만 무려 300건이 넘는 네티즌들의 호소 글이 올라왔다. 10여일 전 울산에서 발생한 어린이집 원아 사망사고와 관련해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23개월 된 이성민 군이 당초 주장처럼 장 파열로 숨진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의 상습 구타에 의해 숨졌을 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 네티즌들의 의혹과 분노는 숨진 성민 군의 부모가 각종 포털사이트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본 뒤에 촉발됐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는 멍든 자국이 선명했다. "부모의 주장대로 구타에 의한 사망이라면 가해자는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분노의 글이 쏟아졌다. 석달이 흐른 지난 18일 인터넷 카페 '23개월 어린천사 성민' 회원들은 서울에서 울산 어린이집 원아 사망사고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에 나섰다. 회원들은 성민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아동폭력에 대한 모든 국민의 관심과 국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성민 군의 부검결과 사망 원인은 장파열에 의한 복막염. 아울러 손등에 방어하다 맞은 자국과 잇몸 윗부분을 젖병으로 강하게 밀어넣어 생긴 상처들이 발견됐다. 전형적인 학대의 흔적들이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로 넘겨져 어린이집 원장은 상해치사, 원장 남편은 폭행치사로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경기도 광명의 한 대형 영화관은 관객 불편을 고발한 UCC 동영상에 백기를 들었다. 주말 심야 영화를 본 관객 수백 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지만 통로는 승강기 넉 대 뿐. 아래 층 상가의 보안문제로 에스컬레이터와 비상계단 등 다른 출구를 차단하면서 생긴 일이다. 이용객 항의에 영화관 측은 되레 경찰을 불렀고, 이런 장면을 찍어서 고발하겠다는 말에 우리도 고발할 수 있다며 응수했다. 대학생 서준범 씨가 만든 동영상이 인터넷에 떴고, 조회 수가 수만 건을 기록하자 영화관 측 태도는 갑자기 바뀌었다. 에스컬레이터와 비상계단을 통해 바로 1층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안내하겠다는 것. 영업 편의만 생각하던 영화관 측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지난 17일 서울 강북구청에는 영'유아 보육조례를 개정하라는 구민 6천900여 명의 서명서가 제출됐다. 구청사상 처음 있는 주민 발의 조례개정 운동이 결실을 맺은 것. 이번 조례 개정 운동을 이끌고 있는 핵심 멤버는 지난해 6월 먹다 남은 음식을 끓여 만든 이른바 '꿀꿀이죽'을 원아에게 제공해 물의를 빚었던 강북구 수유동 한 어린이집 피해어린이 학부모들. 당시 꿀꿀이 죽 파문은 한 보육교사의 인터넷 고발로 시작됐다. 분노를 감추지 못한 학부모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남은 음식들을 모아 돼지죽처럼 끓여먹일 수 있느냐는 것. 아울러 사설 보육시설이 구청 보조금을 받으면서 전혀 감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허점을 파악했다.
지역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입주 예정자들이 개별로 움직여서 큰 힘을 갖지 못했는데, 최근 인터넷 카페를 통해 한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웬만한 요구는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며 "기본적으로 당초 모델하우스와 다른 점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다른 단지와 비교해서 특정 공사를 추가로 요구하는 바람에 설계까지 바꾸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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