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유정의 영화세상] 까미유 끌로델

누구나 한 번 쯤은 사랑을 한다. 김현식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소소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 소소한 사건을 겪는 순간 삶은 특별해진다. 평범하고 별 볼일 없었던 하루 하루가 나만의 전유물로 받아들여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이 나를 주인공으로 한 엑스트라로 물러서 준다. 그렇게 사랑은 '나'라는 존재를 값어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인지, 예술가들에게 있어 사랑 혹은 연애 사건은 중대한 작품과 함께 등장하거나 사라지곤 한다. 사랑만큼 감성과 직관을 뜨겁게 달구는 용광로도 드문 셈이다. 이자벨 아자니와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까미유 끌로델'도 그렇다.

영화는 한 밤 중 묘지의 흙을 주워 담는 한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여자는 이미 미쳐있다. 조각이라는 것, 미술이라는 것, 자신의 손으로 다른 한 세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광기라는 말이 더 적합할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재능과 열정에 빠져 있다. 그녀는 바로 까미유 끌로델, 그녀의 열정은 젊음과 어울려 형형색색의 빛을 발한다.

영화 '까미유 끌로델'은 프랑스의 역사적 예술가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연애사에 대해 그리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프랑스 예술사 희대의 스캔들이다. '로댕'의 제자였던 '까미유 끌로델'은 스승의 예술에 대한 존경과 열정을 사랑으로 해석해낸다. 어떤 경우라 할 지라도 유부남과의 사랑은 위험하다. 게다가 그 유부남이 실력자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까미유는 그의 사랑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예술적 직관의 최고를 경험하지만 또한 에너지의 누수를 경험하기도 한다. 때로 예술은 에너지의 응축에서 빚어진 폭발이기 때문이다.

로댕이 자신에 대한 애정을 거두자 까미유의 사랑은 집착과 분노, 증오로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검증되지 않았지만 로댕의 몇몇 작품을 두고 자신의 모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참혹하게 훼손된 채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마치는 그녀는 예술적 광기가 한 사람에 대한 집착과 융해되었을 때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정작 눈을 사로잡는 것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영화에는 '다나이드'와 '키스', '칼레의 시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소개된다. 이 중 특히 '다나이드'를 만드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로댕은 까미유를 모델로 삼아 신화 속, 불운한 그녀들을 창조해낸다. '다나이드'는 첫 날 밤 남편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평생토록 밑이 뚫린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만 하는 벌을 받는다. 열정으로 포화된 까미유의 육체는 달빛을 받아 항아리로 재탄생한다.

실상 아무리 채워도 차지 않는 항아리는 그녀의 욕망과 열정, 육체 그러니까 까미유 자신이라는 편이 옳다. 사랑의 속살은 삼켜지지만 생선가시가 남아 목에 걸리듯이 그렇게 사랑은 이율배반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얻었지만 그것은 한편 무참히 훼손된 한 젊은 예술가의 영혼이기도 하다. 폐허가 될 것을 알기에, 때론 더더욱 아름다운 열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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