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스타토크]프로레슬러 이왕표

1980년대 초반까지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고, 다큐멘터리보다 더 실감나는 프로그램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히 한국프로레슬링 경기다. 프로레슬러 이왕표 선수. 한 시대를 풍미한 박치기왕 고 김일 선생의 현존하는 마지막 제자이기도 하다. 그가 개발해 낸 드래곤 스페셜(360도 돌려차기는)이 허공을 가르면 섬뜩한 전율이 감돌았었다. 김일, 장영철, 역발산, 양희승, 천규덕, 여건부 선수에 이어 삼십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한국프로레슬링과 삶을 같이 해오고 있는 이왕표 선수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190cm에 120kg넘는 체구. 몸의 균형감은 그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눈빛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고, 세월에 흔적이 묻어있는 붉은 빛에 레슬링 가운은 언제든지 경기에 나갈 준비태세를 갖추고 WWA 세계 챔피언 벨트를 비추고 있다.

1975년도에 19살의 나이로 김일 도장 1기생으로 프로레슬러에 입문한 그는, 80년 이후 프로레슬링계에 스타로 떠올랐다. 태권도복을 입고 링에 올라 360도 돌려차기로 상대편 몸을 강타하고, 허공을 흔드는 이단옆차기 기술을 선보일 때면 애국심을 하나로 묶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에게는 소원 한가지가 있다. "제가 한국 프로레슬러로서 마지막 세대로 끝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지요. 저 이상의 실력을 능가하는 후계자를 만들어 대를 이어가야한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그의 공식직함은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와 대한종합격투기협회 회장이다. 감투하나 머리에 얹어 놓았다고 프로레슬링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있게 아니다. 20여명 가량이 프로레슬러로 현역활동을 하고 있지만, 레슬링에 대한 팬들이 마음이 멀어질까봐 그의 마음도 타들어간다.

하지만 한국프로레슬링에 명맥을 이어가는데 이왕표 선수 혼자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선수들도 필요하지만 국민적 관심도 필수요소다.

그의 말은 느리다. 동작이 빠르다고 해서 말까지 빨라질 필요는 없겠지만, 한국프로레슬링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는 오랜 세월 속에서 사각의 링과 함께 겪었던 프로레슬러로서 타들어가는 심정을 꺼내놓기가 쉽지 않은듯 하다.

"종합격투기가 활성화 되고 있으니까 레슬링 발전에 호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격투기 쪽에서 후배들을 영입하는 작업들을 계속하고 있어요."

요즘은 10월에 김일 선생의 1주년 추모기념대회를 장충체육관에서 계획하고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말한다. 이 대회를 통해 한국프로레슬링 발전에 불씨가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미국, 일본 쪽에서는 레슬링 붐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중심에 우리가 못서고 있다는 게 애석한 일이죠."

그의 무술실력은 합기도 8단, 격기도9단, 태권도 6단이다. 아직 일년에 20회 이상은 국'내외에서 열리는 프로레슬링 대회에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휘트니센터 옥상에 링까지 만들어 놓고 매일 6시간 이상 체력을 다진다고 했다.

"한참 전성기 때도 난 '내일이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경기를 하는 날이 제 인생에 마지막 날이라는 심정으로 링에 올랐습니다. 링에서 죽으면 최고의 행복이라는 마음으로 경기를 했어요. 죽을 각오로 운동을 한다면 이길 사람이 없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한국프로레슬링은 부활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경기를 많이 해야죠. 중국은 프로레슬링이 없기 때문에 그쪽으로 진출을 생각하고 있어요. 선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프로레슬링에 새로운 희망이 보일 때 까지 현역선수로 활동을 할 겁니다." 이왕표 선수에게 한국프로레슬링은 영원히 떠날 수 없는 고향이고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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