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한나라당 좌우명(座右銘)은 있는가

인간은 과거와 역사를 통해 오늘을 배우고 내일을 기약하게 된다. 溫故知新(온고지신)이라는 말이 그 때문에 나온 것일까. 그래서 옛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경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실패한 경험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전진을 위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조 500년 동안 가장 聖君(성군)이었다는 世宗大王(세종대왕)도 그러했다. 세종은 막 건국한 조선왕조가 오래도록 창성하고 후세인들의 귀감이 되도록 중국과 우리나라의 흥망성쇠 등을 기록한 '治平要覽'(치평요람)이란 책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물론 후손들이 女色(여색)에 빠져 나라를 망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明皇誡鑑'(명황계감)이란 책도 세상에 내놓았다. 명황계감의 제작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종이 이개, 박팽년 등 신하들에게 물었다. "옛 사람 중에 당나라의 명황(6대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일을 그린 자가 많았다. 또 한나라 때 황제가 타는 수레와 병풍에는 은나라의 주왕이 술에 취해 애첩 달기와 노닐던 그림을 그려두었다고 한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이에 신하들이 "전하, 그것은 지난날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경계하게 하려는 뜻인 줄 아옵니다."라고 답하자 세종은 "나도 그리하고자 한다. 조선의 천년사직을 위해 미색에 젖어 자신을 망친 당 현종과 양귀비의 일을 그림으로 그려 本(본)으로 삼으려 한다. 이개와 박팽년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형상을 여러 가지 그림으로 그리고 관련된 글을 적어 넣어 책으로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 조선조 27명의 왕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세종조차 과거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 이러한 노력을 했던 것이다.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인 중국 孔子(공자)도 그러했다. 공자는 교만으로 인한 敗家亡身(패가망신)을 경계하기 위해 '座右銘'(좌우명)이란 술독을 하나 만들어 의자 오른쪽에 두었다. 그 술독은 바로 春秋五覇(춘추오패)의 한 명이었던 齊(제) 桓公(환공)의 묘당에 있던 것으로 '텅 비어 있을 때는 기울어져 있다가도 술을 반쯤 담으면 바로 섰다가 가득 채우면 다시 엎어지도록 만들어진 독'이었다. 제 환공이 살아 생전에 그 술독을 의자 오른쪽에 두고 가득 차는 것을 경계했던 것처럼 공자 역시 제 환공의 술독과 같은 것을 만들어 의자 오른쪽에 두고 교만과 넘치는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오늘날에는 자신이 평생 동안 지표로 삼을 만한 글을 좌우명이라 하기도 한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일(12월 19일)이 오늘로 꼭 110일 남았다. 지난 1997년, 2002년 두 번의 대선에서 내리 패배의 쓰라림을 맛본 한나라당이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에 범여권은 한나라당에 맞서 정권 재연장을 위해 전직 대통령까지 가세하고 있고 현직 대통령도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정치권 모두 대선에 올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진정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동안 온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대선후보 경선과정을 끝낸 지 열흘이 넘었지만 승자(이명박)와 패자(박근혜) 두 진영 간의 한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히려 삐걱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패배의 악몽을 깨끗이 잊어버린 듯하다. 主君(주군)인 박근혜 전 대표는 아름다운 승복을 선언하고 白衣從軍(백의종군)의 뜻을 밝혀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지만 상당수의 지지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경선과정에서의 갈등을 치유하고 대선에서의 승리를 다지기 위한 한나라당이 30일부터 이틀 동안 마련한 합동연찬회에 박근혜 전 대표를 밀었던 의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대거 불참하고 당직인사를 둘러싸고도 승자와 패자 측의 불협화음이 새 나오고 있다. '빼앗긴 10년을 되찾겠다.'는 한나라당의 다짐이 무색할 뿐이다. 1997년 경선에서 당시 이인제 후보가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탈당,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서 나타난 소위 '이인제 학습효과'의 약발도 이젠 떨어진듯하다. 한나라당의 대선좌표가 의심스럽다. 우리에게 승복문화가 뿌리 내리기에는 아직도 이른 것일까.

정인열 정치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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