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 5동의 한 빈집.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자 부서진 콘크리트 벽돌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반쯤 허물어진 지붕 아래에는 깨진 거울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잡초가 무성한 마당과 무너진 담장은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방안은 달랐다. 여기 저기 소주병이 나뒹굴고 누군가 펴놓은 때묻은 이불과 소파와 함께 최근까지 사람이 있었는 듯 불을 피운 흔적도 남아 있었다. 주민 박모(60·여) 씨는 "고교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드나들기도 하고 가끔 밤에 싸우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며 불안해했다.
인근의 또 다른 빈집의 상태도 심각했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마당엔 잡초와 쓰레기, 부서진 가구들이 한데 엉켜 있었다. 특히 담쟁이 덩굴이 얽힌 담장은 인도 쪽으로 기울어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게 보였다. 이날 기자가 찾은 빈집 5곳 모두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도심 주택가 곳곳에 자리 잡은 빈 집이 안전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은 채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화재나 붕괴 위험이 높고, 쓰레기 불법투기와 해충 등으로 인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 특히 일부 빈집의 경우 비행청소년들의 놀이터나 노숙인들의 잠자리 구실을 하는 등 우범지대화하고 있다.
대구 남구청과 서구청이 최근 구내 빈 집 실태를 조사한 결과, 모두 80곳이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단속이 되지 않아 우범지대로 전락할 위험이 큰 곳도 12곳이나 됐다. 남구의 경우 빈집 87곳 중 62%인 54가구가 주의와 관찰이 필요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고, 담장이나 건물 등의 균열로 인해 붕괴 위험이 큰 곳이 6곳이었다. 구청 담당자들은 대구시내에 이 같은 빈 집이 적어도 500여 가구는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않고 있는 형편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주민들의 불안감도 크다. 빈집 이웃주민인 신모(65·여) 씨는 "밤에 가끔 사람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섬뜩하기까지 하다."며 "특히 불이 날까봐 겁난다."고 했다.
이처럼 주민 불편이 계속되자 남구청은 건물 소유자들에게 담장 보수와 출입구 폐쇄 등을 요청하고, 균열이 심한 건물 6곳에 '접근금지' 안내 표지판을 붙였다.
그러나 빈집 중 40% 이상이 외지인 소유여서 연락조차 쉽지 않다는 것. 손정일 남구청 재난안전관리과 지역협력담당은 "빈집이 장기간 방치되면 화재나 붕괴 위험, 쓰레기 불법 투기, 각종 해충 등 갖가지 위해요소가 나타나게 된다."며 "건물 철거나 담장보수, 출입구 폐쇄 등 건물주에게 정비를 유도하고 있지만 사유재산이어서 구청이 직접 나서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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