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원!" "30만 원 없습니까?"
"예, 저쪽에 계신 분 손 드셨네요."
"50만 원!" "예 또 드셨네요."
"70만 원…. 90만 원!"
"120만 원…. 예, 120만 원으로 낙찰됐습니다."
31일 밤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 전야제에서 있었던 오페라 로열席(석) 좌석권 경매 장면이었다. 이날 경매에 부쳐진 입장권의 좌석 번호는 1층 B열 204번과 205번. 오페라 하우스 1천 400여 객석 중 가장 좋은 자리로 치는 로열석 중의 로열석이다.
정상적인 표값은 7만 원, 두 좌석 14만 원짜리 티켓이 경매를 거쳐 10배 가까운 120만 원에 팔린 셈이다. 3층 좌석의 1만 원짜리 좌석으로 계산하면 경매된 2장 값으로 120명이 앉을 수 있다. 노래방 값으로 치면 한 달에 1번꼴로 간다 쳐도 5년 치 값이다.
그런 단순 비교를 해보면 표 한 장 값이 너무 비싼 거 아니냐는 계산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오페라 티켓 경매 이벤트는 세계적 흐름인 예술 마케팅의 새로운 변화를 대구에서도 처음 보여줬다는 데서 매우 의미 있는 깜짝 이벤트였다. 표값이 10배 가까이 뛴 만큼 문화 마인드도 그만큼 업그레이드시켰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예술인들은 공연장에 가만히 앉아 있고 관객이 제 발로 객석에 걸어 들어오게 하는 문화마케팅은 이미 낡은 마인드다.
대구시립예술단원들이 지하철 문화 공간이나 병원, 복지 시설들을 찾아가 봉사하는 '찾아가는 공연'이 조금씩 자리 잡아 가곤 있지만 이번 표 경매는 그런 문화마케팅을 또 한 단계 더 끌어올린 문화 진흥 전략으로 평가된다.
이날 첫 경매에서 110만 원에 낙찰받은 중견 기업인은 비싸게(?) 표를 산 이유를 "오페라 못 보는 분에게 기회를 줬으면 하는 뜻에서…"라며 관객선정을 시장님에게 위임했다. 당연히 박수가 터졌고 뒤이은 두 번째 공연(나비부인)표와 120만 원이 나온 세 번째 경매의 분위기를 뜨게 했다. 세 번째 경매 땐 김범일 대구시장도 "120만 원! 없습니까?"에서 맨 먼저 손을 들었으나 경매사회를 맡은 남성희 오페라축제 조직위원장이 오른쪽 객석 쪽을 보느라 시장님 손을 못 보고 다른 응찰자에게 낙찰을 선언했다.
"130만 원 이상 더 올려도 될 것 같지만 이 정도에서 끝내겠습니다"는 '멘트' 없이 경매가 계속됐다면 아마도 이날 티켓 경매는 200만 원은 거뜬히 넘어섰을 분위기였다. 대구가 어렵다, 힘들다고 자조 섞인 고민을 하고 있지만 이날 오페라 전야제의 경매 이벤트는 문화도시 대구가 아직 그래도 미래가 보이고 숨은 저력은 곳곳에 숨어있음을 느끼게 했다.
어떤 도시든 인구가 적고 경제 규모가 취약한 도시도 시민과 지역 기업인의 문화 마인드가 깨어있고 변화해 간다면 그 도시는 언젠가 반드시 일어난다. 문화적으로 일어서면 경제적으로도 일어나게 돼있다.
그런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콜로라도 주 소도시 센트럴시티는 200년 전만 해도 인구 200여 명의 초라한 시골 광산 도시였을 뿐이다. 그게 70여 년 전 여름 오페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단 42일간의 여름 한철 오페라 공연에 도시 인구의 몇 배가 넘는 3만여 명의 외지 관객들이 몰려와 북적거린다. 주민 수입이 늘어나고 도시가 살아 움직이게 된다. 물론 공연비용도 많이 든다. 30억 원이다. 눈여겨볼 것은 30억 예산의 60%(약 18억 원)가 이 도시 시민'기업인의 문화사랑 모금으로 충당된다는 점이다. 30억 원을 들이지만 3만 외지 관객이 표값과 문화상품 쇼핑, 식사비 등으로 뿌리는 돈은 100억 원에 가깝다고 한다. 여름 한철 오페라 한 건으로 마을 하나가 먹고사는 셈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도 공연 수입 외에 단돈 8천 원을 받고 무대 뒤(의상실, 연습실 등)를 구경시켜준다. 무대 뒷구석도 마케팅하는 것이다.
앞으로 대구도 '모든 전시 공연 입장권은 전부 경매로 거래되는 도시'라는 특색 있는 세계적 문화도시로 변모해 보는 건 어떨까. 재미있을 것 같다.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의 성공을 기대한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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