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프랑스를 이끌었던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 전 대통령은 도무지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더불어 프랑스 역대 대통령 중 저서를 가장 많이 냈을 만큼 지성적인 면모도 두드러졌다. 프랑스 국민들에게 열렬한 지지와 혐오를 동시에 받는 미테랑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그의 '숨겨진 딸' 이야기다.
1994년 11월 3일, 주간지 파리 마치誌(지)가 미테랑에 관한 특종 보도를 터뜨린 뒤 프랑스 전국은 벌집 쑤셔놓은 듯 시끄러웠다. 당시 78세의 대통령에게 안 팽조라는 숨겨진 여성과 그 사이에 마자린이라는 20세 된 딸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미테랑-다니엘 부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냉랭한 관계였다. 자존심 강한 다니엘은 바람 피운 남편 옆에서 행복한 아내의 모습을 연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국빈 만찬이 있는 날이면 국빈의 차가 엘리제궁을 빠져나간 30분쯤 후 다니엘 여사의 차가 조용히 엘리제궁을 빠져나가곤 했다는 것이다. 다니엘의 냉대 속에 미테랑은 엘리제궁 밖 마자린 모녀에게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1940년대 미국 서민 가장의 애환과 절망을 가슴 뭉클하게 그린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극작가 아서 밀러(1915~2005)가 다운증후군 아들의 존재를 숨겨왔다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영원한 섹시 아이콘 마릴린 먼로의 세 번째 남편이기도 했던 밀러와 먼로와 헤어진 뒤 결혼한 세 번째 부인 잉게 모라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밀러는 장애 아들을 생후 며칠 만에 양육기관에 맡겼는데 아들의 존재를 평생 숨기고 싶어했던 것 같다. 딸 레베카의 남편이자 영화배우인 사위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여러 번 아들과의 만남을 권유했지만 끝까지 만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도 결국 사망 직전에 아들의 존재를 인정했다. 다른 세 명의 자식과 똑같은 몫의 재산을 현재 40세인 대니얼에게 남겨주었다는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려 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 묻은 아들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까지 숨길 순 없었던 것일까.
동서를 막론하고 유명인사들의 숨겨진 자식 얘기는 드물지 않다. 우리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공공연한 비밀을 가진 예가 적지 않다. 21세기라지만 '숨겨놓은 자식'은 유명인들에겐 여전히 큰 걸림돌인가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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