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PD연합회 창립 기념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 발언을 두고 또 다시 언론가가 떠들썩하다. 필자 또한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발언을 접했을 때 역시나 정제되지 않은 단어들의 파열음으로 인한 불편함과 함께 재임기간 내내 국민들이 기대했던 대통령의 '품격'이란 단어가 절실하게 떠올랐다.
임기 말에 터져 나온 이번 정부와 언론 간의 갈등은 어느 일방만의 문제는 분명 아니다. 어떤 제도라도 완벽한 것은 없듯이 그간 출입처 제도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것도 사실이고, 그와 관련한 기자들의 지나친 정보원 의존에 대한 지적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말대로 보수적 언론은 물론 진보적 언론조차도 왜 대통령의 적이 되었을까? 이러한 극단적 상황에 이르게 된 데는 대통령 자신의 문제 해결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해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출입처 기자실 제도 개선은 언론기관과 독자 그리고 학계가 힘을 모아 자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권위주의 정부 때처럼 정부가 칼을 들고 위압적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 정부가 할 일이 있다면 출입처 기자실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보다 합리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건전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와 언론 간의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 속에서 언론의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빛을 발할 것이다. 과거 권언 유착으로 인한 폐해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역사가 언론에 그러한 권력을 준 것은 더 큰 권력기관들을 적절히 비판하고 견제할 세력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와 언론의 이러한 '자연스런 적대관계'가 아니었더라면 1971년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즈'에 의한 미국 '국방부 기밀문서'(Pentagon Papers) 폭로사건은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월남전에 대한 진실은 역사 속에 영원히 파묻혀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언론을 입법·사법·행정에 이은 제4부라고 부른다. 입법·사법·행정, 이 3부를 견제하는 네번째 기관이란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권리장전'이 의회에서 통과되자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에게 편지를 보내 "어떤 정부도 감시자가 없으면 안 된다. 그리고 신문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 정부는 항상 감시자를 갖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언론은 이러한 권력을 획득하기까지 언론의 자유를 위해 많은 피를 흘려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와 시민이 언론에 부여한 제4의 권력으로서의 언론의 기능과 역할 자체를 부정하려는 듯한 과격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건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 생각된다. 이건 시민운동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일부 단체들에게서 간혹 볼 수 있는 '내가 이런 좋은 일을 하니까 너는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해'와 같은 독선적인 태도와 비슷한 것 같다. 이러한 태도는 탈권위주의와 도덕적 청렴함을 내세운 또 다른 형태의 권위주의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출입처 기자실 문제해결 방식 또한 매우 감정적이고도 유아적으로 보인다. PD 창립 기념행사에 초대된 자리라 하더라도 PD와 기자 집단을 이간질하는 듯한 그러한 발언을 한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로서 정말 부적절한 언사다.
속보와 최신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자들, 특히 방송기자들의 경우는 한정된 시간과 지면으로 인해 사건의 본말을 상세하게 다루지 못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 정도면 이해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상식일 것이다. 그러한 기자들의 속보성과 시의성을 중심으로 한 보도행태를 심층성이 부족하다고 매도하는 자세는 비열하기까지 하다.
기자의 전문 영역이 있고, PD의 전문 영역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레임덕 현상에 불안해하면서 안달하는 소심한 지도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만일 '언론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언론'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정부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는 제퍼슨 대통령의 여유가 노 대통령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아마 우리 언론도 스스로 변하지 않을까?
배현석(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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