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식민지가 됐다.'는 가정 하에 전개되는 일본 애니매이션 '코드기어스'. 타니구치 고로 감독의 이 작품은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청소년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게시판마다 팬카페가 만들어졌고, P2P나 UCC사이트 등을 통해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중국을 '중화대제국'으로, 미국을 '브리타니아'라는 가상의 제국으로 묘사, 브리타니아에 점령된 일본에서 수수께끼의 힘 '기어스'를 손에 넣은 소년이 브리타니아와 친구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특히 제국주의에 희생된 일본의 참상과 심각한 차별을 받는 일본인, 일본 황실 찬양, 일본 독립운동가의 활약 등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당한 피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 열망을 미화하거나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이 청소년들 사이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청소년들이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이 강하게 투영돼 있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면서 왜곡된 역사관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
만화가 가와구치 카이지의 애니메이션 '지팡구'는 더욱 노골적이다. 최신식 이지스함과 핵무기가 시간을 거슬러 2차 세계대전 당시로 되돌아가 일본군을 도와 미군을 격파한다는 내용. '핵을 보유해 세계의 평화를 지킬 자격이 있는 나라는 그 피해를 직접 겪은 일본밖에 없다.', '(일본은) 고향,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거다.' 등 극우적인 내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실제 이 만화의 작가 가와구치는 대표적인 우익만화가로,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정당성과 자위권 해석 개정을 주장하는 등 정치색 짙은 만화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국내 케이블TV에서 방영되면서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은 '개구리중사 케로로'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모자와 복장으로 논란이 됐었고, 많은 반향을 일으켰던 '혐한류(嫌韓流)' 시리즈는 3편이 지난달 28일 새로 출간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군국주의적 성향의 일본 만화들이 빼어난 작품성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 화려한 작화와 탄탄한 스토리, 탁월한 심리묘사 등으로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 만화가가 꿈이라는 이모(16) 군은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내용이 짜증날 때도 있지만 워낙 작품성이 뛰어난 만화들이라 안 보고는 못 배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만화의 심리적인 장악력을 감안하면 우익 성향의 만화들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만화의 경우 사진매체보다 뇌리에 깊이 각인되고 감정적으로 매달리기 쉬워 자칫 여물지 않은 청소년들의 역사관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
이재웅 이재웅만화연구소장은 "요즘 청소년들은 정치·역사적 문제에 대해 둔감하기 때문에 일본의 논리에 동화되기 쉽다."며 "청소년들이 이 같은 만화를 스스로 걸러낼 수 있도록 학교와 언론매체에서 토론의 장을 만드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