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5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초강수를 선택한 것은 복합적인 노림수라는 풀이가 지배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흔들림 없이 국정의 중심에 서고,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은 막겠다는 의지의 강한 표명이라는 것이다.
◆이명박은 안돼=청와대는 "국정원과 국세청 할 것 없이 정부기관이 정권 연장을 목표로 전략을 세우고 개입하는 것은 만천하가 안다."는 이명박 후보의 3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발언을 직접적으로 문제 삼았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4일 청와대를 방문해 조사하겠다고 말한 게 청와대를 자극한 측면도 있다. 진수희 의원이 '이명박 검증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했다가 검찰에 불구속 기소돼 청와대에 자신감도 쌓였다.
결국 청와대는 사상 초유의 야당 대통령 후보 고소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명박 집권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고소 방침을 밝힌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선)개입이 아니고 선거 공정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라며 "한나라당과 이 후보의 행태는 앞으로 선거 기간 중 대두될 검증을 청와대 정치 공작설로 회피하고 모면하자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청와대 브리핑도 4일 "이 후보의 불법 의혹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재앙이다."라고 직공한 바 있다.
◆검찰·국세청에 분발 촉구?=문재인 실장의 고소 취지 설명 가운데 '앞으로 선거 기간 중 대두될 검증'이란 표현은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검증'이 지리하게 펼쳐졌지만 청와대의 눈에는 아직 미완이라는 인식의 표현으로 읽힌다. 같은 맥락에서 청와대가 원칙을 지켜 고소했으니 검찰과 국세청도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말고 원칙적으로 대응하라는 주문 성격도 짙다. 검풍(檢風)·세풍(稅風)이 대선 전에 강하게 불 것이라는 예보일지도 모른다는 분석이다.
◆노무현 vs 이명박=청와대는 요즘 힘들었다. 정윤재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의 비리연루 의혹과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비호 의혹이 연일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깨끗한 정권'이란 노 대통령의 자부심에 치명타를 가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정치 상황도 노 대통령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해체를 반대했으나 결국 해체됐고, 대통합민주신당 예비 경선(컷 오프)에서 친노(親盧)인 이해찬·유시민·한명숙 후보가 손학규·정동영 후보에게 밀렸다. 이대로라면 노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범여권 후보가 정해진 이후에는 레임덕 이상 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청와대는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는 이명박 후보를 문제삼아 정국의 중심에 서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무현 대 이명박' 구도는 친노 후보에게 도움될 수 있다.
비노(非盧) 후보의 입장은 다르다. 노 대통령의 국민 지지도가 높지 않아 '노무현 대 이명박' 싸움이 오래가면 필패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이명박 고소를 선뜻 반기지 못하는 이유다. 현직 대통령과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간에 벌어지고 있는 초유의 정치 게임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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