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거꾸로 든 무기

뉴스위크가 최근 '한국은 담 위에 서 있는 꼴'이라고 보도했다. 현 아시아 정세와 한국이 처한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틀린 표현도 아닌 듯싶다. 중국-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경제'와도 같은 맥락이다. 뉴스위크는 미'일'호주 삼각동맹+인도 동맹 관계와 중'러'파키스탄 등 상하이협력기구(SCO) 동맹 체제의 패권 경쟁이 가시화되면서 여타 아시아 국가들이 외교적 딜레마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이런 주장들이 보다 밀접해진 경제교류나 복잡한 정치외교적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지나치게 도식적인 분석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소위 '중립'으로 분류된 한국과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이 어느 세력 판도에도 휩쓸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어디에도 끼지 않은 이들 국가들이 양자 선택을 강요받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한국은 참여정부 들어 예전과 같지 않은 한'미 관계, 날로 높아지는 중국과의 경제적 의존도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한층 많아졌다. 어느 판도에 속하기도 쉽지 않고, 외톨이로 남아있기도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고 보면 '국익'이라는 잣대를 들고 계속 고민해야 할 판이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상황에 계속 노출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뉴스위크는 이 같은 대결 구도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민족주의의 부상과 대만문제, 인권문제 등 역사적 분쟁, 에너지 안보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엄밀히 보면 한국의 경우 출발점은 '내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분단과 지지부진한 경제상황, 남남 갈등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요인들이 작용해 경제와 안보가 허술해지고 참여정부가 타개책으로 내놓은 '동북아균형자론'도 갓끈 떨어진 세도가 짝 나고 말았다. 결국 스스로 강한 힘을 갖지 않으면 주변 정세가 우리 입맛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직접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만큼 고약한 일은 없다. 최근 몇 년 새 한국 젊은이들의 민족주의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일부 학자들은 낡은 패러다임이라며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감정적 민족주의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량 청년실업과 양극화, 동아시아 역사 갈등, 치열해지는 군비 경쟁 등에 대한 젊은이들의 위기 의식이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뚫고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단순화시켜보면 富國强兵(부국강병)으로 귀결되고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현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의 표출인 것이다.

史記(사기)에 중국 은나라를 연 成湯(성탕'무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색에 빠져 포악한 정치를 일삼던 하나라 걸왕 시절, 성탕이 교외로 나갔다가 사방에 그물을 치고 천하의 모든 것이 내 그물에 들어오도록 기도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이에 성탕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잡을 수 없다며 세 방면의 그물을 거두게 하고는 "왼쪽으로 가고 싶은 것은 왼쪽으로 가게 하고,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 것은 오른쪽으로 가게 하소서"라고 축원하도록 도왔다. 소문이 제후들의 귀에 들어가 성탕의 덕이 금수에까지 이르렀다고 칭송받게 된다. 성탕이 하나라 정벌에 나서자 모든 제후들이 그를 따랐다. 놀라운 것은 성탕의 인품에 감복한 걸왕의 군사들이 무기를 거꾸로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덕이 사람을 모으고 사람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다.

IMF 사태 이후 많은 변화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두터운 보수에 질식사할 뻔했던 진보가 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러기를 10년, 개혁을 표방한 현 집권층은 많은 일을 벌였다. 그런데 여론이 갈라지고 민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잡겠다는 조급증과 개혁 피로감이 위기를 부른 것이다. 올 대선에서 누가 대권을 잡든 중요한 것은 흔들리는 민심을 다잡고 담 위에 선 고약한 상황을 타개하는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자신이 적임자라는 후보들 중 민심을 추스르고 위기 상황을 이겨나갈 지도자 '깜'이 보이지 않는다. 그늘 짙으면 해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지는 것이 이치듯 덕 있는 사람을 바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어찌 외면할까.

徐 琮 澈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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