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이란 음식에 대해서 두 가지 극명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여러가지 나물들을 한데 뒤섞어 놓았음에도 제각각의 고유한 맛을 느낄수 있는 '어울림'이라는 평가가 가능하고, 각각 재료의 본연의 맛은 살리지 못한 채 '맛을 대충 한데 뭉뚱그려놓은 음식'이라는 평도 가능할 것이다.
작가 황석영이 4년만에 내놓았다는 신작 '바리데기'를 읽은 느낌은 바로 '비빔밥'이었다. 문장은 지루하고 이야기는 허공을 헤맨다. 황석영이란 작가의 이름값이 무색하다는 느낌이다. 작가는 북한과 중국, 영국, 그리고 이슬람권까지를 아우르며 전세계를 배경으로 작품을 써 내려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다. 부유한 당간부의 7째 딸로 태어났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부모와 형제들을 모두 잃고 중국땅을 거쳐 영국으로 밀항하게 되는 가련한 운명을 가졌다. 하지만 그녀를 살게 했던 것은 바로 '바리공주 신화'. 작가는 '바리공주', '칠공주', '오구풀이'라고도 전해지는 '바리데기 전설'을 주인공 인생의 거대한 줄기로 내세워 역경을 헤쳐나갈 힘을 부여했다. 원래 바리데기는 버림받은 일곱째 막내딸이 아픈 부모와 아픈 세상을 구하러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지옥 너머 서천까지 가 생명수를 얻어온다는 이야기다. 황석영씨는 이 설화를 시대에 맞게 변형을 가했다. 소설은 현재와 신화속의 세계를 혼란스럽게 오가며 독자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유도한다.
그가 예전부터 천착해온 '북한'이라는 주제는 이번 소설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역사의 서술도 길었다. 남한보다 더 나은 경제상황을 유지했던 197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던 80년대, 그리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최악의 기근을 겪은 '고난의 행군' 시기가 소설에는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소설 후반부를 이어가는 것은 9'11 테러 이후 빚어진 서양세계와 이슬람권의 대립이다. 천신만고 끝에 중국을 거쳐 영국 런던으로 밀항한 '바리'가 '알리'라는 이슬람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함께 휩쓸린다는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다. 그 외에도 중국 조선족의 실태와, 영국 런던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제 3세계 이민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이 속에서 '이동'과 '조화'를 주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전세계를 떠도는 바리의 행적이 바로 '이동'이고, 그 속에서 이념과 사상'인종과 국가를 뛰어넘고 사랑을 실천하고 희망을 찾아내려는 바리의 노력이 '조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렇게 이해가가지만 가슴으로는 선뜻 와 닿지 않는 '이동'과 '조화'라는 주제다. 이 소설이 제 각각 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비빔밥'의 맛으로 읽힐지, 이 맛도 저 맛도 잃어버린 '비빔밥'으로 읽힐지는 독자의 몫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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