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유곽의 역사

100년, 거리의 시간은 흘러갔지만…

유곽의 역사/홍성철 지음/페이퍼로드 펴냄

가장 오래된 직업이 몸 파는 것이라 했던가.

"오빠, 어디가? 잠깐 놀다가~"로 남성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유혹의 거리. 붉은 빛 조명에 1평 반 되는 은밀한 공간, 윙크와 달콤한 추파가 넘쳐나는 그곳을 '집창촌'이라 불렀다.

대구의 대표적인 집창촌 자갈마당이 내년이면 100년을 맞는다.

자갈마당의 시작은 1908년 야에가키초 유곽에서 출발한다. 당시 일본인 거류민단이 대구성 동쪽 폐수가 흐르는 곳을 매립해 유곽을 설치했다.

그런데 왜 자갈마당이 됐을까.

자갈이 많아 붙여진 이름은 틀림없고, 일설에는 일제시대에 유곽을 만들면서 복숭아나무를 베어내고 황해도에서 가져온 자갈을 깔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걸을 때 소리가 나는 자갈을 깔았다는 얘기도 있다.

자갈과 물이 많아 집을 지을 때도 애를 먹었다고 한다. 자갈마당에는 대부분 지하실 없이 지상부 건물만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집창촌의 역사와 현주소를 그리고 있다. 자갈마당을 비롯해 파주 용주골, 미아리 텍사스, 청량리 588광주 대인동, 부산 완월동, 인천 옐로우하우스, 포항 중앙대학 등 한국 집창촌 100년의 역사를 담았다.

집창촌의 역사는 한때 아시아 최대의 매춘거리로 유명세를 탔던 부산 완월동 집창촌의 전신인 아미산하 유곽부터 시작된다. 개항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긴 성매매 업소들이 성병 예방과 풍기문란 예방이란 명목 아래 한 장소에 집중된 출발점이 아미산하 유곽이다.

한때 일본인만을 위해 운영되던 유곽은 철도의 개통과 함께 조선 전역에 뿌리를 내리며 식민지 착취로 인해 빈곤에 시달리던 여성들과 성매매에 눈뜬 남성들을 빨아들였다.

유곽의 번성은 유교적 전통을 갖고 있는 조선 사회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주며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애인의 돈 때문에 팔려간 여자들이 생겨나고, 포주에게 학대당하는 여성에 등굣길 집창촌으로 인한 아동 교육문제, 곤궁한 사회에서 비정상적으로 호황을 누리는 성매매에 대한 개탄 등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지은이에 따르면 집창촌 이전에도 성을 파는 여성들이 있기는 했지만, '전업형' 성매매는 하지 않았으며, 함께 모여 영업하는 공간도 따로 존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본이 조선을 점거하면서 자국민을 위해 자국의 독특한 유곽을 들여다 앉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유곽의 역사를 연대별로 정리하고, 전국 집창촌의 탐방해 적은 '집창촌 깊이 읽기'를 곁들였다. '개항지 유곽시대'(1876~1905), '철도유곽시대'(1906~1930), '전쟁유곽시대'(1931~1945), '사창전국시대'(1946~1961), '특정지역시대'(1962~1980), '신 사창시대'(1981~2004)로 나눠 싣고 마지막에는 성매매특별법을 통해 본'집창촌의 현재와 미래'를 덧붙였다.

오는 23일은 성매매특별법 제정 3주년을 맞는 날이다. 집창촌의 역사가 끝난 것일까. 그러나 지은이는 '오픈 엔디드(Open-ended)'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성매매나 집창촌의 문제는 늘 현재진행형이며 끝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집창촌 해체라는 성과를 보이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성매매가 음지로 숨어들어가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말이다. 안마시술소 등 편법형 성매매업소의 수적 증가가 이를 증명해준다.

지은이는 지난해 여름 3개월간 전국의 집창촌을 탐방해 취재했다. 30여 곳의 집창촌에서 만난 주민들과 포주, 성판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또 통금해제와 올림픽 개최로 인한 산업형 성매매, 전국으로 퍼진 티켓 다방, 윤금이 사건으로 본 기지촌 여성 등 집창촌이라는 돋보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보게도 한다. 360쪽. 1만 8천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