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찰떡이 되어버린 송편의 추억

4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온 지 30년이 되었지만, 위로 큰댁이 두 집이나 있어 아직은 제사 없이 남들보다 명절을 편히 지내는 편이다. 시집온 첫해의 추석은 지금도 생각하면 나를 웃게 만든다.

대구에서 3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도착한 고향 의성에는 대구에서만 살아온 나를 몹시나 서글프게 했다.

도착하여 옷을 갈아입고 일을 도우려하니 형님(종동서)께서 시장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처음 온 시골집의 어색함을 조금이나마 들어주시려 했음인 것 같다.

송편 빚을 불린 쌀을 비료포대에 담고 시장에서 구입할 품목들을 적어서 읍내로 갔다.

방앗간에 쌀을 맡기면서 "자네는 여기 있게. 복잡하니 잘 봐야하네" 하시고는 장을 보러 가셨다.

집에 돌아와 익반죽하여 여럿이 둘러앉아 예쁘게 송편을 빚었다. 가마솥에 솔잎을 깔고 송편을 쪘는데, 송편의 형체가 간 곳 없고 찰떡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남의 집 쌀과 바뀐 것이다.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큰아버님께서 들여다보시고는 "송편은 우쨌노?"하신다.

그때 형님께서 "아버님, 제가 찹쌀을 너무 많이 넣어 찰떡이 되었으니 이번 추석에는 조상님께 찰떡을 올립시더"하신다. "야들이 무슨 소리하노?"하셨지만 추석 차례는 송편 없이 무사히 치렀다. 그때 형님의 재치는 정말 대단했다. 형님, 아랫동서 배려해주셨던 그 마음 영원히 간직할게요. 늘 건강하세요.

여종희(대구시 남구 대명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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