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비경이라는 공공의 재산에 관하여

그곳이 어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수백 년 된 소나무 숲이 있고, 숲이 품었다 흘려보내는 물이 십여 킬로미터를 흘러내리며 계곡을 이루는 곳이다. 계곡 입구에 닿아 있는 지방도는 꼬불꼬불해서 운전을 하는 데 애를 먹인다.

인근에 사는 주민은 많지 않으며 여름철 휴가 때에나 조금 북적거릴 뿐 그 외에는 지역 전체가 적멸의 박물관이라도 되는 듯 조용하다. 몇 년에 한 번, 못 견디게 보고 싶어 여러 시간 걸려서 가기를 대여섯 번인데 그것도 아껴서 마음의 비경으로 남겨놓았다.

몇 달 전 여름이 시작되면 복잡해질까 싶어 미리 가보았다. 계곡가에 화학비료를 담았던 비닐 푸대가 여럿 걸려 있었다. 계곡 중간에 집이 있는데 집터보다 크지 않아 보이는 조그마한 논마다 농약병이 허리까지 잠겨 있고 '콘도형 민박'이며 토종닭 음식을 판다는 팻말이 집집마다 붙어 있었다.

자그마한 마을을 지나가자 다시 정다운 정적이 돌아왔다. 그런데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연기가 음험하게 숲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모퉁이를 돌자 푸른 물과 녹색의 숲, 흰 바위가 이뤄내는 심미적 균형을 산산조각 내는 뻘건 철제 주택이 나타났다. 통유리로 창을 낸 방이 십여 개는 되어 보여서 흔한 펜션인가 싶었지만, 아무런 표시가 없는 것이 개인이 주말에나 들르는 별장이었다. 그곳에 은둔하다시피 살아온 사람이 판 농가를 때려 부수고 지은 것이 분명했다.

맞은편에 새 별장이 통나무로 지어지고 있었다. 연기는 그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방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고 그 쓰레기 가운데서도 독한 냄새를 풍기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타는 중이었다. 구덩이 속에는 쏟아부은 페인트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인부들이 사용하고 있는 간이화장실에 오물이 흘러넘치고 있었고 화장지와 휴지조각이 사방에 널렸다. 계곡물에는 인부들이 먹다 남은 일회용 음식물 용기며 소주병이 굴러다녔다.

왕후장상 같은 웅대한 나무들이 下溪(하계)를 굽어보고 있는 숲의 턱 밑에 이르자 버섯 농사에 쓰는 나무토막과 가림막이 썩은 채 형식적으로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안쪽에 나무를 베어 만든 큰 공터에서 본격적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컨테이너 옆에 남자들 몇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빠르고 요란한 음악소리와 기름 냄새가 꽤 떨어져 있는 차 안에서도 느껴졌다. 외제 지프 옆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채 제대로 된 도구로 바비큐 파티를 벌이고 있는 남자들은 이미 그런 일에 익숙해 보였다.

계곡에 있는 음식점, 별장 공사판, 컨테이너 옆의 남자들 그 누구도 법적으로 큰 문제를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허가를 받았을 것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거래를 했을 것이고, 자기 소유의 땅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나는 무엇인가 그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격심한 충동에 시달렸다. "당신들, 그렇게 해서 충분히 재미있고 행복하시오?"하고 묻고 싶은 것이었다. 물론 이성이 충동을 억눌렀다. 이성적인 근거는 없지만,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있는 어느 산의 허리를 자르다시피 하며 거대한 석산을 개발하던 회사가 망한 데는 그 산을 그렇게 망가뜨린 부정적인 에너지가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약간의 근거가 있는 건 충청도의 어느 산 정상 바로 아래를 두부모 자르듯 깎아내고 성벽 같은 거대한 축대를 세웠으며 숲을 파헤치는 긴 도로를 낸 뒤 콘도미니엄을 건설한 회사가 망해버린 경우다. 그 흉물스럽고 욕심 사나운 모양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마다 회사의 이름을 확인했고 그 회사에서 생산한 물건을 사기 전에 그 이미지를 떠올렸던 까닭이다.

제 나름으로 아끼는 비경을 찾아온 사람들이, 자기네만 잠시 재미있자고 멋대로 균형을 깨뜨리고 돌이킬 수 없게 그 비경을 오손하는 존재가 있다면 혀를 차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겠는가. 손가락질이며 눈총이라는 게 무슨 힘이 있겠는가마는 거듭되다 보면 만인의 指彈(지탄)이 악몽으로 나타날 수는 있다. 물론 여기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곳이 어디라고 말할 수도 없다. 특정한 어느 한 곳이라 할 수도 없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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