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포럼] 제2의 이순호를 기다리며

외국인 신부 늘어나는 한국…성공정착 도울 방법 찾아야

일본 야마가타현 도자와 마을. 이따금 마을에 곰들이 출몰하기도 하고 겨울엔 집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깊은 산촌이다. 이 마을에는 이순호라는 한국 여성이 살고 있다. 1990년 이 마을 청년과 결혼해 아이 낳고 18년째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적응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외국인이라는 편견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한 예로, 첫아이를 임신하고 김치를 먹는 그녀를 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임신 중에 고춧가루를 먹으면 아기가 '민둥머리'로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어서란다.

첫딸은 다행히 엄마를 닮아 새까맣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이 촘촘히 박혀서 나왔다. 그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김치를 조금씩 입에 대기 시작했다. 이순호 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고 지금은 지역 방송에 출연해 오리지널 한국 김치 담그는 법을 소개하기에 이른다. 낮에 일하러 가는 현지 젊은 주부들과 어울리기 위해 마을에 있는 전기부품 공장에도 다녔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돌면서 김치, 만두 등의 한국 요리도 함께 만들고, 먹는 방법과 한국의 음식문화를 알려주었다. 한국으로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한국어 회화를 가르치기도 했다. 1997년부터는 마을 '고려관'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고려관'은 일본 내에서 한국문화와 풍습을 접할 수 있는 이색 문화공간으로, 기와를 얹은 한국식 건물로 지었다.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국음식에서부터 연예상품까지 구비해 판매하고 있으며,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부스도 있다. 현재 '고려관'은 다문화 공존의 좋은 사례로 현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순호 씨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 상대방의 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도자와 마을은 이순호 씨를 통해 한국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고려관'이라는 다문화 공간을 만들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2세들에게 어머니 나라의 문화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결혼이민자를 우리나라 사람으로 '동화'시키기보다는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 교육인 것이다.

둘째, 여성결혼이민자 스스로 주체적인 목소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 여성결혼이민자를 수혜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기보다 인적자원으로 성장시키는 일이 바람직하다. 흔히 이들 여성이 일을 해 경제력을 갖게 되면 도망갈지 모른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그래서 여성결혼이민자가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운 집이 아니라면 가족들은 이들 여성이 집안에만 머물고 바깥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역공동체의 주체로서, 또 문화적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성공적인 적응을 도와주는 길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셋째, 다문화를 수용하려는 지역공동체의 노력이다. 결혼이민자가족의 경우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대로 둘 경우 빈곤이 대물림되고 인종적 편견으로 인해 새로운 소외계층이 될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

결혼이민자 여성들의 문제가 전국적인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이들이 뿌리내리고 살아갈 곳은 바로 지역이다.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도 경북도는 '행복가족 어울림 프로젝트'를 통해 결혼이민자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앞으로 더욱 성과를 보기 위해서는 민간과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행정이 장(場)을 만들고, 민간이 그 장에서 자기 역량을 펼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농촌 총각 3명 중 한 명이 국제결혼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고국에 돌아가 자신들의 '한국 적응기'를 자랑스레 소개할 수 있는 제2, 제3의 이순호가 나오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한국사회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보듬고 살펴주고 함께 성장해가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일선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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