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기행)군산에는 여전히 '탁류'가 흐른다-채만식

금강 하구언댐을 지나 군산으로 건너갔다. 하구언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강 하류 강물은 군산의 아픈 역사만큼이나 여전히 흐린 탁류다. 군산을 문학기행의 장소로 삼은 이유는 물론 채만식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채만식의 생애는 그가 남긴 여러 글에서 만날 수 있듯이 동경 유학을 보낼 정도로 부유했던 집안이 급격하게 기울고, 그에 따라 머리맡에 원고지를 잔뜩 쌓아놓고 글을 써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로 뼈저린 가난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군산은 그러한 채만식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다. 식민지 시대 일제수탈의 중심 기지였던 군산의 슬픈 역사는 채만식의 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군산은 식민지시대 인천과 더불어 가장 활기찬 면모를 자랑하던 신흥 도시로, 일제가 이 땅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발전시킨 항구였다. 일제의 병참 기지화 정책에 따라 궁핍화가 더욱 극심해지는 가운데 일제의 수탈을 위한 하나의 창구 역할을 했던 군산. 주인공 초봉의 슬픈 삶을 통해 뒤틀린 조선의 사회상을 풍자한 에는 1930년대의 군산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 부분)

소설 속의 탁한 금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미두장(도박장)에 얽혀 있는데, 미두장이 있던 거리(장미동 구 조선은행 건물 옆)에는 지금 '백룡 채만식 소설비'가 서 있다. 또 채만식을 기리는 문학비는 월명공원 내 금강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있다.

하구언댐을 건너자마자 오른편에 자리 잡은 채만식 문학관. 전체적으로 정박한 배의 형상을 한 현대식 건물. 문학관 앞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나름대로 조화가 엿보인다. 2층 건물로, 1층에는 전시실과 자료실이 있는데 파노라마식으로 채만식 삶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다. 특히 1층 전시실의 원형공간은 채만식의 치열한 삶의 여정을 시대에 맞춰 소개하고 있다. 자료실과 2층 로비에는 각종 도서와 논문 자료, 다양한 사진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영상 세미나실도 만들어져 있어 영상 자료 관람은 물론 세미나도 할 수 있다. 문학관 주변에는 콩나물고개를 상징하는 둔뱀이 오솔길, 호남평야에서 걷어 들인 쌀을 실어오는 기찻길 등 시대를 형상하며 채만식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미두, 백릉, 청류, 문학 광장으로 조경하여 관람객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두었다. 군산 사람들의 채만식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문학관 옆 갈대밭과 멀리 보이는 하구언댐을 보면서 오늘만큼은 '민족의 죄인'이라 스스로 불렀던 채만식의 부끄러운 친일조차도 껴안을 수 있는 마음이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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