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실패는 우리 대통령제에도 원인이 있다. 물론 본인 탓이 전부이겠지만 단 1표라도 이기면 권력을 싹쓸이하는 승자독식(winner take all) 제도 또한 그를 오만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불과 2.3% 포인트 차 승자였다. 사실상 반쪽 지지를 갖고 천하를 차지한 교만에 빠져든 것이다. 집권 내내 절반의 반대가 존재한 데 대한 겸양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말로는 돌이킬 수 없는 국민과의 불화였다.
이명박 앞에도 그런 함정이 입을 벌리고 있다. 그의 경선 승리는 머리카락 같은 1.5% 포인트 차이다. 반쪽짜리 승리다. 그러나 승자독식의 법칙은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제1야당의 권력 전부를 그에게 쥐여 주었다. 하루아침에 한나라당의 1인자 자리를 차고앉은 것이다. 얼마나 막강한 자리인가.
그 자신 간발의 승리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는 않다. 현실적으로도 박근혜 지지자들을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는 정도야 물론 알고 있다. 그런데 태도를 보면 어디까지나 승자의 입장에서 베푸는 식이다. 선심의 자세다. 그런 접근으로 반대자를 돌아 세울 것이라고 보면 대단한 착각이다. 자리 몇 개 나누어주고 할 만큼 했다고 하면 어리석은 생각이다. 박근혜 쪽은 '졌다'기보다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거의 기운 집안을 일으켜 세운 안주인이 졸지에 들려 나왔다고 억울해 하는 사람들이다. 다 차려놓은 밥상을 가로채였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단순한 패배의 아픔 이상의 공황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명박 쪽은 '반성해야 한다' '자는 척하는 사람들'이라고 긁어대고 있다. 섬세하지 못한 짓들이다. 승리에 도취한 오만이다. 하기야 요즘 같아서는 이명박에게 뭐가 아쉽고 절박할까 싶다. 그는 경선이 끝나자 30%대이던 지지율이 50%대로 수직상승 했다. 무엇보다 박근혜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넘어왔다. 한나라당 지지율도 50%대 중반을 고공행진하고 있다. 경선 후유증은 걱정거리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 딱 좋게 생겼다. 그러니 집토끼가 튀어봤자 어디로 가겠는가 하는 큰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이대로' 하는 구호를 합창하는 것도 그런 자만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5년 전 선거 때도 이맘때쯤 한나라당 후보는 독주였고 선거는 끝난 것처럼 보였었다.
그는 지금이 절정이다. 앞으로 3개월은 까마득한 절벽길이다. 지독한 검증 칼바람이 얼마나 많은 피를 부를지 모른다. '10년 집권' 세력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들 것이다. 10월 남북정상회담 또한 예측 못할 대형 변수다. 가능성 높은 범여 후보 단일화는 부동층을 요동치게 할 것이다. 그의 인기가 더 오를 것도 없고 내려갈 길만 훤히 내다보이는 것이다. 그런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경선 효과 덕으로 치솟았던 지지율은 한 달도 채 안 가 내려앉고 있다. 40%대가 눈앞이다.
이런 국면에서 그가 박근혜를 만나 '잘 해보자' 한 걸로 모든 갈등이 끝났다 보면 위험천만이다. 선거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행위다. 더욱이 반대쪽을 끌어오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정치적 반대자가 여간한 감동이 아니고서는 태도를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 박근혜 지지자들 충성도는 알아준다. 거기에다 여당 못지 않게 이명박의 부동산 의혹을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이명박 지지는 신념체계를 180도 바꾸어야 하는 문제다. 그런 사람들은 섬세하게 보듬어야 한다. 패자의 입장에서 아픔을 이해하는 내재적 접근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마음을 열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나라당은 물 위에 뜬 기름일 뿐이다. 원수처럼 패가 갈렸던 사람들에게 무조건 '돌격 앞으로' 한다고 얼마나 뛰겠는가. 선거는 당원이 자기가 출마한 것처럼 뛰어야 승산이 있는 거다. 박근혜 지지자 자신들이 대통령 출마자인 양 신명나지 않으면 이명박의 미래는 어둡다. 그의 선거는 만인이 대통령 꿈을 꾸도록 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렸다. 이렇게 빤한 답을 두고 한나라당 지도부는 총선 공천권을 무기로 대선 기여도를 닦달하고 있다. 국회의원과 정치 지망생들을 선거현장에 내몰면 충분하리라는 판단 같다. 투박한 '노가다'식이다.
金成奎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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