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 한잔의 단상] 우리들의 찌그러든 영웅

"원투, 원투, 훅-훅- 왼손, 오른손" 밤이 이슥한 시간입니다. 다들 잠든 시간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는 부자가 있습니다. "어깨를 내밀면서 주먹을 뻗어, 한 방에 보내야 해" 두꺼운 손바닥을 펴고 아들의 주먹을 받아주고 있는 아버지, 연신 두 주먹을 날리고 있는 아이, 올림픽 출전선수의 열정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500원이면 군말 없이 하루를 보내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500원짜리 하나를 더 요구합니다. "왜?"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을 아까워할 부모가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천원을 주던 엄마, 귀가하는 아이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이 500원짜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너, 나머지 돈은 어떻게 했어?"

뉴스속의 사건이 실제 발생한 것입니다. 재미삼아 반 친구들을 때리고 돈을 갈취하는 악질 보스의 등장. 상황을 파악한 아이엄마는 학교로 직행합니다. "이 녀석, 한번만 더 그러면 가만두지 않는다." 엄마의 방문은 즉각 효과를 발휘합니다. 귀가한 아이의 눈언저리가 시퍼렇게 변했습니다. 속이 터진 아이엄마, "그 녀석이 때렸어?" "아니, 넘어 졌어" 애써 변명하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글썽입니다. 보고 있던 아버지가 아이를 취조합니다. "천 원 줄게 이야기해봐" "싫어" "그럼, 모형자동차 사 줄게." "정말?"

아이의 이실직고에 아버지는 분개합니다. 학교장에게 전화하고, 학교장은 담임에게, 담임은 악질보스의 부모에게 전화합니다. 운동장 한 가운데, 양측 부모가 대치하고 있습니다. 헌데~ 악질보스의 부모,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애들 노는데 어른이 왜 끼어드느냐고 오히려 큰소리칩니다. 유구무언!

강도 높은 훈련이 시작됩니다. 아이를 강화시켜 정면승부를 하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음을 안 것입니다. "딱 한방, 얼굴에 명중시켜야 한다." 연신 짧은 훅을 가르치는 아비는 참으로 오랜만에 정시에 퇴근을 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출정을 준비하던 어느 날, "아빠, 나 이제 권투연습 안 해도 돼" 귀가한 아이가 싱글거립니다. "아니 왜?" "우리 보스가 친하게 지내자고 해서 그러기로 했어" "뭐라고?" 아뿔싸! 적과의 동침, 아이가 2인자를 수락한 것입니다. "나쁜 사람과 타협하면 너도 나쁜 사람이 되는 거여" "아빠, 친구지간에 그런 게 어디 있어?" 빙긋이 웃는 아이의 손에는 보스가 주었다는 사탕이 들려있습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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