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화재로 문제가 생겨 빌린 돈을 못 갚아…,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이제 출소하면 농사지으러 시골로 갈 예정입니다…. 매일신문 '농촌은 희망이다-으뜸농장' 연재물과 데스크칼럼을 읽으며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경북지역 우수농가의 실적과 비결을 소개한 기사와 칼럼을 보고 편지가 왔다. 농고를 졸업했고 고향에서 머슴을 두고 농사도 지어봤기 때문에 귀농을 결정했다면서, 무슨 농사를 지을지 판단하기 위해 필요하니 스크랩하지 못한 기사 연재분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연재물을 책으로 엮은 '농업경영혁신 시리즈'(농촌정보문화센터 발행) 경상북도편 1·2권을 등기우편으로 보내주면서 "참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으뜸농장' 연재물을 다루면서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농업이야말로 블루오션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믿음은 품질 우선, 친환경 농법, 기술 개발, 고부가가치화 등으로 우리 농업을 선도하는 혁신 농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음으로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의 노력을 보면 놀랍다는 경탄이 절로 나온다.
요즘 기업치고 디자인이나 브랜드 파워 키우기를 도외시하는 곳은 없지만 농업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버섯제품 디자인을 초콜릿색으로 한 농가가 있었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유행한 색상은 분홍색이고, 올해는 초콜릿색이라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유 브랜드 개발은 당연한 과제다. 남들 따라 그냥 브랜드 하나 갖는 차원이 아니라 소비자 눈길을 잡고 뇌리에 남는 브랜드를 만들어낸다.
신선이 먹었을 정도로 품질 좋은 복숭아라는 의미의 '경산 신선(神仙) 복숭아', 참외 품평회에서 1등상 먹었음을 자신있게 드러낸 '성주 장원(壯元) 인삼 참외', 천하제일 명품을 줄인 '천제명' 홍삼, 생산자의 의지가 확 다가오는 '황소고집' 버섯….
포장에도 신경을 무척 쓴다. 특히 소포장을 강조하는 추세인데 소비자들이 쉽게 손에 쥐도록 하자는 생각에서다. 한 달에 20㎏ 쌀 1포대를 먹는 가정이 드물다는 것을 간파하고 500g 포장까지 해내는 농장도 있다. 골판지 상자 대신 랩에 씌워 부추를 출하하는 것은 청결을 강조해 눈길을 끌기 위한 노력이다.
매출의 80% 이상을 전자상거래로 거래하므로 컴퓨터는 필수품이다. 중년이 되기까지 컴퓨터를 만져보지도 못했던 이들이 지금은 TV보다 컴퓨터 모니터를 훨씬 더 오래 본다.
또 정말 열심히 일한다. 하루 4시간만 자는 이도 있다. 열정도 대단하다. 어쩌다 외국에 나가도 키우는 소 안부를 매일 물어댄다. 디지털 카메라와 메모지, 볼펜을 빠트리고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한 버섯농은 노하우를 전파해 마을 300여 농가가 100억 원 매출을 올리게 했다. 한 농장에는 5년 동안 외국인을 포함해 1만 명이 넘는 농업인이 견학했다.
이들은 자신만 잘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도시와 농촌이 교류해서 다 같이 잘살길 바란다. 관광체험 농장을 지어 도시민들과 교류하는 것을 장래 희망으로 삼는 이들이 대다수다. 농장에 와서 친환경 농법을 직접 보고, 농사일을 체험해보면 우리 농업을 왜 살려야 하는지를 저절로 깨달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10여 일만 있으면 한가위다. 아무리 어렵다지만 역시 이날만큼은 떨어져 살던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혈육의 정을 나눌 것이다.
이럴 때에는 역시 맛있는 음식이 한몫하게 된다. 햅쌀로 빚은 송편에다가 신물 과일들이 정담을 더욱 무르익게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농업에 대한 걱정도 깊어질 것이다. 당장 차례상에 올릴 저 송편이 과연 우리 쌀로 빚은 것일까? 고사리는 국산을 고집하기 어렵게 된 지 오래됐다지? 그런데 조기는 도대체 우리나라 서해산인가, 중국 황해산인가? 그래서 성급히 우리 농업은 이제 안 돼 하고 생각하거나 이런 의견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오산임을 이 농가들은 확연히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글머리의 편지 보냈던 사람을 몇 년 후 성공한 귀농인으로 소개하는 기사를 쓰게될 날을 기다려본다.
이상훈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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