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을 고갯길따라)가창~헐티재~각북~팔조령 드라이브

저만~치 먼 산 어느새 붉은 빛 길가 마을엔 감이 익고…

하루가 다르게 가을 색(秋色)이 완연해지고 있다. 하늘은 갈수록 코발트 색으로 바뀌고, 길가엔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가 바람에 한들거린다. 가을은 불현듯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바야흐로 가을 빛이 감돌기 시작한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을 잇는 헐티재, 팔조령 옛 길을 찾았다. 별다른 준비 없이 그냥 차를 몰고 나서기만 하면 가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드라이브 길이다.

1)달성군 가창면 용계리~헐티재

신천 좌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가창면 용계리가 나온다. 용계리에서 청도 팔조령 터널로 향하는 30번 도로 대신 우회전해 902번 지방도로 접어든다. 가창댐으로 가는 길이다. 모습을 드러낸 가창저수지는 가을 빛을 머금고 있다. 잔잔한 수면은 이제 막 시작된 단풍의 빛깔을 머금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저수지 위쪽 미술관에서 잠시 작품을 감상하며 상념에 잠겨본다.

용계천을 따라 좀 더 올라가자 가을 색이 좀 더 짙어진다. 길 가 한 곳에서는 노부부가 참깨를 터느라 여념이 없다. 자식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참깨 수확을 하는 노부부에게서 진한 사랑이 느껴진다. 도로를 따라 선 가로수 가운데 '성질 급한' 나무들은 벌써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논 한가운데 선 허수아비가 정겹다.

2)헐티재~이서면

평일이어서인지 지나가는 차량이 거의 없는 헐티재는 고즈넉하다. 노루가 숨을 헐떡이며 넘나들었다는 높이 500m 남짓의 헐티재에 서자 비슬산 아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은 고개를 넘어온다는 말처럼 아직 헐티재 주변의 산은 푸르지만 조만간 울긋불긋 단풍의 향연을 벌일 것이다.

헐티재를 넘어 청도 각북으로 접어들자 달성군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저마다 테마를 가진 찻집과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 길에 있는 테마 카페들을 하나둘씩 돌아보는 것도 드라이브 여행의 백미 가운데 하나다. 허브마을과 도예촌, 찻집 겸 석물원 등도 이 길을 따라 있다.

시장기가 돌아 청도추어탕을 메뉴로 골랐다. 청도 곳곳에 유명한 추어탕이 있지만 902번 도로를 따라가다 각북면 오산1리의 할매집추어탕을 찾았다. 미꾸라지의 진한 향기가 풍기는 추어탕(4천 원)과 금방 지어 김이 솔솔 나는 밥이 나왔다. '할배가 농사를 짓고, 할매가 밥을 짓는다'는 식당 벽의 문구처럼 인정스런 시골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함께 나온 콩자반과 고추절임, 곰삭은 김치 등도 추억을 자극한다. 식당 한쪽에서 식사를 하는 어르신들의 "올해 벌초를 하는 데 힘이 들었다." "납골당을 세워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얘기를 듣고 추석이 멀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낀다.

3)이서면~팔조령

30번 도로를 따라 이서로 접어들자 감나무가 많이 눈에 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린 감들은 한창 노랗게 물이 들고 있는 중이다. 볕이 잘 드는 가지엔 붉은 홍시가 달려 있다. 감의 고장답게 청도 곳곳은 가을이 되면 '초록 캔버스에 주홍색 물감으로 무수한 점을 찍은 듯' 노을 빛 감들이 향연을 펼친다.

'문상할 일이 있어 밀양 가는 길/ 기차가 마악 청도를 지나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감나무 숲/ 잘 익은 감들이 노을 젖어 한결 곱고/ 감나무 숲 속에는 몇 채의 집/ 집안에는 사람이 있는지/ 불빛이 흐릿한데, 스쳐지나는/ 아아, 저 따뜻한 불빛 속에도 그늘이 있어/ 울 밖에 조등(弔燈)을 내다 걸었네'(정희성 시인의 '청도를 지나며')

터널이 생긴 이후 팔조령 옛 도로는 드문드문 차량이 지날 뿐 한적하기 짝이 없다.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도 없기에 시속 20~30㎞의 느린 속도로 해발 497m의 팔조령 고갯길을 오른다. 팔조령(八助嶺)은 장정 8명이 힘을 모아 함께 가지 않으면 고개를 넘을 수 없다 해서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과 팔조령에서 마주 보이는 남산이 새가 날아오고 있는 형상이라 입조(入鳥)라 불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들입(入)자가 여덟팔(八)자로 변해 팔조(八鳥)령이 됐다는 주장이 있다. 옛 도로를 따라 정상까지 오르는 10여 분 동안 지나가는 차를 한 대도 만날 수 없어 시간이 멈춘 도로를 달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4)억새가 피는 최정산

팔조령을 넘어 달성군 가창면으로 접어든 후 최정산으로 차를 돌렸다. 미사일 기지로 인해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최정산은 개방 이후 가족, 연인들이 많이 찾는 드라이브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사이 주변의 어떤 나무들은 벌써 단풍이 들었다.

5분여를 달렸을까.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다. 해발이 700m에 이르는 최정산 목장지대는 가을이면 억새와 단풍이 조화를 이뤄 사진 동호인들의 출사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억새는 벌써 가을 분위기를 한껏 풍기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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