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과 청평사를 만나러 떠난 춘천 문학기행.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에 기행단의 마음까지 흠뻑 젖었다. 춘천은 안개의 도시다. 춘천 톨게이트 앞에서 만난 산자락의 환상적인 비안개에 가슴을 쳤다. 김유정의 실레마을로 간다. 몇 구비의 산허리를 돌아 실레마을에 들어섰다. 작고 고즈넉한 마을이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가량 산을 끼고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만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빽이 들어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고 하여 동네 이름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래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50여 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그러나 산천의 풍경으로 따지면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귀여운 전원이다. 산에는 기화이초로 바닥을 틀었고, 여기저기 졸졸거리며 내솟는 약수도 맑고, 그리고 우리의 머리위에서 골골거리며 까치와 시비를 하는 노란 꾀꼬리도 좋다.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시적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 하는 그들을 대하면 딴세상을 보는 듯하다. (김유정 기념비의 부분)
김유정은 1908년 1월 11일 춘천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또한 말더듬이여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말수가 적었다. 김유정의 집안은 천석지기의 지주였고, 서울에도 백여 칸 되는 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아홉 살 때는 아버지를 여읜 뒤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더욱이 집안을 책임지고 있던 큰형의 방탕한 생활로 말미암아 가세는 급격히 기울어갔다.
김유정은 어린 나이에 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달랐다. 자신이 말하는 그리움은 모두 어머니에 대한 환상이었다고 훗날 고백할 정도였다. 세상의 그늘을 모르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온 어린 김유정에게 어머니의 상실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연이은 아버지의 죽음과 가세의 급속한 쇠락은 어린 김유정을 자신만의 내성적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후 폐결핵에까지 시달리며 김유정은 깊은 우울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어머니에 대한 집요한 그리움과 숙명적 우울, 이러한 상태에서 김유정은 두 여인(박녹주, 박봉자)을 향해 일방적으로 사랑을 갈구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무작정 바라듯이. 하지만 그의 이러한 우울과 깊은 그리움은 어떤 여인에게서도 보상받지 못한다. 수많은 편지를 두 여인에게 보냈지만 응답이 없었다. 첫 번째 여인 박녹주는 평범하게 사랑할 수 없는 연상의 기생이었고 두 번째 여인 박봉자는 유정의 구애를 멀리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해버린다. 사랑에 실패한 김유정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문학 창작이었고 기댈 곳은 고향인 실레마을이었다. 그런 점에서 소설 에 나오는 배경은 실레마을이며 어리숙한 '나'는 김유정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 아픔에 함몰되지 않는다. 웃음으로 풀어낸다. 어디선가 알싸한 동백꽃 향기와 함께 점순이와 내가 벌이는 닭싸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으며 김유정 문학촌 앞에 당도했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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