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 일이다. 여행사를 통해 여행 상품을 예약했다. 며칠 뒤 직원이 예약한 호텔보다 좋은 호텔로 바꾸었다고 자랑스럽게 알려왔다. 원래 예약한 호텔보다 여건이나 환경이 훨씬 나은 호텔이며, 다른 사람들은 못 구해 난리인데 운이 좋았다고 했다. 나는 좋고 나쁘고를 떠나 고객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여행사 마음대로 계약을 변경하느냐고 따졌다. 그 뒤 공항에서 서류를 작성할 때 여행사 직원은 "아, 선생님이셨구나."라고 했다.
상인들끼리는 '팔다 못 팔면 학교에 가서 팔면 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요즘은 덜한 편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상인들이 교무실에 찾아왔다. 그러면 누군가는 상술에 현혹되어 물건을 산 뒤 후회하곤 했다.
교직 외 타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누가 선생 아니랄까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대부분 교원들이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좋게 보면 원리·원칙을 중시하고, 규범을 어기지 않으려는 점을 칭찬하는 말이다. 순박함과 순수함, 그리고 때 묻지 않은 모습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생각의 폭이 좁다는 말이다. 융통성이 없음을 꼬집는 말이다. 돈이나 마음 씀씀이가 통이 작고, 옹색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사는 모습을 비꼬는 말이기도 하다.
그 때마다 나는 학생과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이기 때문에 통이 작다고 욕하면 안 된다고 항변해 왔다. 오랜 시간 학생들의 눈높이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학생들과 닮게 된다. 또, 교사들이 교섭하는 세계의 크기는 그저 학교, 학생, 가정 정도에 국한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세상의 많은 부분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학교 밖에 서 보니 친구들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교원들도 학생을 지도할 때는 학생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해야겠지만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는 나이와 지위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는 사물, 사실, 현상 등을 학생 수준에 맞게 재해석·재구성하면 되는데, 늘 아이들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는 무관심한 채로, 교원 양성 과정에서 배운 지식과 좁은 학교 사회에서 얻은 경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뭔가 부족하다. 새로운 지식, 경험, 가치, 경향을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 격의 없이 만나야 한다. 철옹성처럼 쌓아 놓은 나만의 알량한 자존심을 허물어야 한다. 나의 부족함을 일깨워주는 지적은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교원으로서의 자질과 사회인으로서의 자질을 함께 길러야 한다. 그것을 펼쳐내는 때와 장소를 달리하면 된다. 지도는 지도고 삶은 삶이다.
이 글을 읽은 친구가 전화로 또 그럴지 모르겠다. '누가 선생 아니랄까봐.'
박정곤(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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