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있는 중소기업이라면…?'
취업전선에서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다. 취업난 속에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주위 반응은 냉랭하다. "비싼 등록금 대줬더니 기껏 중소기업이냐?"는 식이다.
사실 전망있는 중소기업이 웬만한 대기업보다 낫다.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 발휘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취재팀은 지역의 유망 중소기업에서 꿈을 펼쳐가는 30대 4명에게서 직장 얘기를 들어봤다.
▷이상혁/38/(주)퓨전소프트 R&D 1그룹장(부장급)/만 3년/경북대 전자과 박사 수료
▷이재규/37/(주)다사 관리부 차장/7년/대구대 화학과
▷이양순/37/(주)위니텍 경영기획부 과장/3년/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법학과
▷배준호/32/삼익THK(주) 전략기획팀 계장/2년 9개월/계명대 국제학 대학원
◆중소기업을 택한 이유는?
이상혁 : 대기업은 업무가 세분화돼 있다 보니 개개인이 기계속 부품과 같다. 대덕단지내 항공우주연구소에서 근무를 했고, 개인사업도 해봤다. 꿈을 펼치기엔 중소기업이 기회가 더 많다. 팀원들과 연구, 개발해 시판한 '오드아이(휴대용 멀티미디어플레이어와 내비게이터의 복합기능 제품)'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성공한다면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
이재규 :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지만 작은 회사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는 역동성에 반했다. 규모가 작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회사와 함께 커보자는 의욕이 생겼다.
배준호 : 일본과 합작한 회사여서 일본어 전공을 살릴 기회가 많다고 여겨졌다. 외형만 큰 기업보다는 지방 중소기업이지만 내실이 있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 끌렸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면서 핵심 역할을 하고 싶다.
◆중소기업에 취업했을 때 주위 반응은?
이상혁 : 부모님께 처음 말씀 드리니 "그냥 연구소에나 다니지…."라며 말꼬리를 흐리셨다. 내가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요즘은 좋아하신다.
이재규 : 왜곡된 시각이 아쉽다. 구직자 중에는 대기업 취직에 실패해 마지못해 지원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들은 "내가 왜 이런 데서 일해야 하나."라며 불만이 가득 차 있다. "시내버스가 없네." "근처에 식당이 없다."며 갖가지 트집만 잡는 경우가 많더라. 겉만 보고 판단하는 세태가 아쉽다.
이양순 : 아무런 상관없다.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못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다녀보니 큰 차이를 모르겠다. 차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놓고 취업의 포커스를 어디에 뒀느냐는 것뿐이다.
◆임금 및 복지 수준은?
이재규 : 대기업보다 못하지만 중소기업도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 초임은 적지만 갈수록 많아진다. 근속기간에 따라 자녀 학자금을 주는데, 고교는 전액 지원해주고, 15년 이상 근무하면 대학생 자녀 2명까지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 준다.
이양순 : 대기업보다는 좋지 않지만 회사에서 나름대로 배려하고 있다. 야근이 많다 보니 회사에서 수요일은 오후 6시에 퇴근하도록 독려한다.
배준호 : 대기업의 임금이 좀 높아도 서울의 방값, 비싼 물가를 고려해보면 중소기업보다 낫다고 보기 어렵다. 실질임금 수준은 우리와 비슷하거나 못하다고 본다. 근로복지기금 운영, 학자금 지원, 자기계발 학습비 지원 등으로 복지수준도 높다.
◆중소기업의 매력은?
이재규 : 관리부에서 일하지만 바쁠 때에는 생산현장에서 일을 한다. 모든 일을 다 해볼 수 있어 좋다. 특히 회사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7년 전 입사 당시에는 직원 10명도 채 안 되는 자그마한 회사가 지금은 연매출 100억 원을 기록하는 대구의 스타기업으로 컸다.
이양순 : 너무 인간적이다. 1994년에 지금의 사장과 인연을 맺었는데 출산과 육아로 중간에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그때 사장이 언제든 다시 오라며 위로해줘 6년 뒤에 연락하니 반갑게 맞아줬다. 재입사를 했지만 1년 만에 승진도 했다.
배준호 : 대기업 경우 사람은 많고 자리는 부족하다 보니 입사 동기간에도 경쟁이 치열하다. 인간미가 없다. 반면 중소기업은 조직문화가 가족같다는 점이 장점이다. 선후배 간 경쟁보다는 모자라는 것은 서로 가르쳐주고 언제나 대화의 파트너가 된다.
◆회사의 교육 프로그램 및 인적개발 의지는?
이상혁 : 직원들의 교육에 대해 무척 신경 쓴다. 직급에 따라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자체교육 여력이 없어 외부 위탁 형태로 이뤄지는데 1년에 며칠씩 교육을 받는다. 기술개발 교육에 집중하는데 개별기술 습득정도가 평가에 반영된다.
배준호 : 연 2회 의무적으로 업무, 능력 개발과 관련한 통신교육을 받고 1년에 한두 차례 생산성 본부 등의 교육 연수에도 참가하고 있다.
이양순 :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서는 최첨단 기술을 익혀야 한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 '인적개발'이 회사의 미래라고 여길 만큼 직원 교육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개인당 연간 50만 원 정도의 교육비가 지급된다.
◆취업준비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배준호 : 대구에는 마땅히 들어갈 만한 기업이 없다고 불평하는 젊은이들이 많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대구에도 괜찮은 중소기업들이 많다. 수준을 낮추라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만큼 중소기업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보길 권한다.
이양순 : 진입 장벽이 높은 대기업을 고집하기보다 유망한 중소기업을 선택해 능력과 경력을 쌓으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이상혁 : 차려진 밥상을 먹기보다는 열정을 다해 멋진 밥상을 차려보는 것이 더 보람된 일이다. 대기업의 수많은 직원 중 하나로 머물 것인지, '주인'이 돼 비전에 투자할 것인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잘나가는 中企 지역도 많아요
'대구·경북에 취업할 곳이 없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지역에도 '잘나가는' 중견기업들이 꽤 있다.
이들은 연간 매출액 규모가 1천억 원을 넘거나 기술력 하나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지역 중소기업들이다. 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끊임없는 연구 개발로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작지만 강한' 기업들도 많다.
대구와 인근 지역에 연 매출 1천억 원이 넘는 회사가 21개에 이른다. 임금 및 교육프로그램이 대기업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 이보다는 규모가 적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도 많다. 지난 3월 대구시는 잠재력이 높은 '스타 기업' 24개사를 선정, 세제혜택 등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연매출 100억 원 이상, 고용 인원이 평균 140명에 이른다. 결국 대구에 유망한 중견기업이 50개 안팎에 이른다는 얘기다.
윤인현 대구시 기업지원팀장은 "임금, 복리후생, 근무조건 등 대기업에 못지 않고 각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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