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포수의 방어율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역대 방어율이 가장 좋은 투수는 1.20을 기록한 선동열(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다. 그렇다면 포수로서 역대 가장 방어율이 좋은 선수는 누구일까? 넌센스 같은 질문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 투수의 방어율은 포수와의 합작의 산물이다. 따라서 같은 방식으로 산출한 포수의 방어율도 중요한 평가가 된다.

박정환(현 포철공고 감독)은 선수 생활 11년 동안 이만수의 그늘에서 지냈다. 경북고, 한양대를 거쳐 이만수와 함께 국가대표 포수를 지냈고 프로야구 창단 멤버로 삼성에 나란히 입단했다. 개막경기 후 나흘 만에 결혼해 프로야구 출범 이후 최초의 커플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에게 이만수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이만수는 다치지도, 지치지도 않았고, 슬럼프도 없었다. 이만수의 활약이 크면 클수록 더그아웃에서 박수만 보내는 나날이 늘어날 뿐, 아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해 술로 달래 보기도 하고 영원히 올 것 같지 않는 차례를 기다리는 답답함에 구단에 트레이드 요청도 해보았다. 하지만 남은 건 서른이 넘어서도 변하지 않는 만년 후보의 자리였다.

어느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가 물었다. "아빠, 후보가 뭐야? 애들이 아빤 맨날 후보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 무엇인가 자신의 삶이 잘못되어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야구에서 2인자는 될 수 있어도 인생에서 마저 2인자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늘 기구한 운명만 탓했지, 정작 내 인생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나." 그는 스스로 패배의식을 인정했다. 야구에서의 경쟁에 대한 패배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가지 못한 잘못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에게 라이벌은 이만수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그는 불펜에서 투수의 볼을 받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젊은 투수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격려했다. 비록 그들과 한 이닝을 막더라도 전력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조력했다.

1990년 5월 29일 이만수가 관중석으로 깡통을 던진 사건으로 10경기 출장정지를 받자 그는 모처럼 스타팅멤버로 출장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33세 때였다. 그리고 이만수가 돌아올 때까지 치른 10경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1992년을 끝으로 은퇴했지만 그때까지 3년간 그가 방어한 포수 방어율은 1점대 였다.

비록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는 않았지만 출장한 경기에 대비해 가장 많은 완봉승을 이끌어냈고 연패를 끊는 포수라는 명칭도 얻었으며 투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포수로 지명됐다. 뛰어난 투수 리드와 정곡을 찌르는 수읽기의 노하우로 그는 코치로 추천을 받았고 선수 생활을 포함해 19년 동안 삼성에서 생활했다.

포수 출신으로 삼성 감독을 지냈던 정동진 씨는 말했다. "투수의 대기록은 휼륭한 포수의 도움으로 탄생하지만 그걸 자랑하는 포수는 없다. 그것이 야구이며 인생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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