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유정의 영화세상] 허진호의 작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언젠가 드라마 작가 노희경은 이 영화를 두고 소년의 사랑이라 말한 바 있다. 동의한다. 허진호의 작품 '봄날은 간다'는 '한 여자'를 이해할 수 없는 소년을 그리고 있다. 소년은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 소녀가 남자를 이해할 수 없듯이. '봄날은 간다'는 그 이해할 수 없음의 매력과 치명성에 대해서 읊조린다. 라면을 먹자며 자신을 먼저 유혹하는 여자, 침대 밑 깊숙한 곳에 결혼사진을 버려둔 여자, 갑작스레 마음이 바뀌어 이별을 선언하는 여자, 그 여자는 의문투성이다.

어떤 남자에게든 한 여자가 미스터리로 다가갈 때가 있다. 그 땐 바로 그녀를 사랑할 때, 사랑할 때 그녀는 커다란 물음표처럼 위험하고 어렵다. 대답을 구하는 자에게 사랑은 상처로 남는다. 사랑은 불균형한 인간관계라서 순진한 쪽이 상처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랑이란 흥미롭게도 누군가에게는 가해자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해자로 각인된다. 그리고 참 이상하게도 내가 피해자였던 사랑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가해자였을 때, 못됐게 굴었던 사랑은 그저 한 때의 추억으로 사라져 좋았던 시간만 취사선택해 앙금으로 남긴다. 사람은 사랑할 때만큼 이기적일 경우도 없다.

허진호의 새 영화 '행복'은 감독의 작품이 소년의 사랑에서 남자의 연애로 옮겨왔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순진하고 열정적인 소년이 성장하면 그 다음엔 바로 때묻고 파렴치한 남자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이다. 남자의 성장에는 순진과 파렴치의 중간이 없다. 지독한 여자를 만나 비참한 사랑을 한 후 대개 소년은 남자로 성장해 버린다. 그리고 나서 그 남자는 진정한 사랑 혹은 순수와 독하게 결별한다. 소년은 상처가 아물고 나면 노골적이고 파렴치하게 그 상처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 복수는 사랑했던 여자에 대한 미움이라기 보다 '사랑'이라는 것에 너무 많은 것을 내 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에 가깝다. 그렇게 소년에서 남자가 된 그들은 사랑을 불신한다.

황정민과 임수정이 주연을 맡은 '행복'에서 남자, 황정민은 치사하다 못해 잔인한 남자로 등장한다. 술과 담배, 매연에 찌든 몸을 끌고 남자는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 온다. 그곳에서 들꽃처럼 순수하게,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한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자신의 손을 잡고 싶어하고, 자신과 함께 잠이 들고 싶어하고 자신과 키스를 하는 데도 또 키스하고 싶다며 고백한다. 남자는 이 고백에 대해 묻는다. "정말 넌 내가 그렇게 좋니?" "끄덕끄덕" "세상에 정말 그런 게 있긴 있구나."

남자의 대답, 세상에 정말 그런게 있긴 있구나, 라는 말은 어쩌면 과거 소년이었던 시절의 자신에 대한 회상일 지도 모른다. 그 남자도 먼 옛날엔 그랬던 적이 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져다주고 싶고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무슨 위험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런 시절. 하지만 이제 남자의 기억 속에 그 순간들은 퇴적물이 된 채 굳어져 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남자는 사랑을 둔화시킨다. 남자가 된 소년에게, 사랑은 인생이라는 비즈니스의 일부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