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사회의제화를 위한 국민보고서/ 이창곤 쓰고 엮음/ 도서출판 밈 펴냄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고 잘살 수 있다.'
무척 매력적인 말이긴 하지만, 어떤 이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점점 더 큰 부자가 되는 반면에 어떤 이는 아무리 애면글면 애써도 좀처럼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 최하층민들은 물론이고 가까스로 중산층 분류에 속하는 많은 서민들도 순전히 개인적 재능과 노력만으로 부자의 꿈을 꾸기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안다.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사회적 성공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은 또 어떤가. 엄청난 사교육 부담으로 인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기회를 실질적으로 좌우하고, 부의 세습 못지않게 학력, 학벌의 세습 또한 심각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갈수록 확대되는 빈부격차와 교육기회의 불균형 현상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사회의 해결해야할 과제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누구나 노력하면 건강하게 백수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 성인병에 시달리던 비만환자가 노력 끝에 몸짱으로 변신하고, 말기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운동 등 갖은 노력 끝에 완치되는 '기적'의 소식을 접하면 건강이야말로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분야인 것 같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볼 때 부유층보다는 빈곤층이, 교육받은 사람보다 받지 못한 사람이 건강에 취약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부'와 '교육'과 마찬가지로 '건강'도 애당초 평등하지 못한 출발점을 가지고 있는 탓에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 없는 사회적 과제인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건강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 책은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건강을 바라보고 이를 정책화 해 건강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매우 낯설면서도 신선한 시도에 도전하고 있다. 빈부격차의 확대, 교육기회의 불균형 등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적 의제에 덧붙여 건강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 양상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
우리 사회의 건강 불평등 현상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흡연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중졸 이하와 대졸자 간의 흡연율 격차는 1989년 7.4%에서 2003년 28.4%로 크게 증가했다. 중졸 이하에 비해 대졸자가 담배를 훨씬 많이 끊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대졸자 흡연율은 무려 23.2% 감소했으나 중졸 이하의 흡연율은 단지 2.2% 줄어드는 데 그쳤다.
또 우리나라 여성의 흡연율은 선진국에 비해 대단히 낮고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낮아지거나 증가하지 않고 있는 데 비해 젊은 여성, 특히 저학력 젊은 여성의 흡연율만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3년 대졸이상 젊은 여성의 흡연율은 1989년에 비해 1.4배 늘어났으나, 중졸 이하 여성의 흡연율은 5배나 증가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가난한 계층, 우리 사회의 실패자, 낙오자일수록 흡연자들이 더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흡연과 이로 인한 각종 질병은 개인의 문제 못지않은 해결해야할 사회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 책에서는 흡연뿐만 아니라 '부모의 지위에 따른 아이의 건강지수' '동네에 따라 달라지는 수명' '비정규직의 정신건강'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통해 건강불평등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임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또 선진국의 건강불평등과 정책을 소개하고 건강불평등 해소를 위한 제안까지 곁들여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 따라서 불평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체제의 불평등은 '기회의 균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적인 사회적 삶을 누릴 수 없다면 자유민주주의는 그 뿌리째 흔들리고 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교육'과 '건강'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핵심 의제이다. 280쪽, 1만 2천500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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