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착한 김유정 문학촌. 기대했던 것보다 넓고 잘 꾸며져 있었다. 기차역을 김유정역이라고 고쳐 부를 정도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정문에 들어가면 연못이 있고 그 너머에 정자를 만들었다. 외양간과 뒷간도 복원해 두었다. 생가 앞. 예쁘게 단장된 초가 처마 아래에서 잠시 앉아 쉬었다. 정면에는 김유정의 동상이 보였다. 동상 옆에는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유정의 삶과 작품세계, 나아가 김유정이 보여주고 싶었던 30년대의 식민지 농촌의 실상을 다양하게 지켜볼 수 있는 곳이었다.
김유정의 작품에는 가슴에 와 닿는 한국인의 정서와 언어가 있다. 그의 언어는 단순히 언어라기보다는 살아있는 목소리다. 실제로 이루어지는 대화를 그대로 녹음하듯 김유정은 현장의 목소리와 정서를 정확하게 포착한다. 가난하지만 푸근한 삶에서 우러난 특유의 정서들, 그 속에 슬픔을 감추고 있는 웃음과 원수처럼 싸우면서도 떨어지지 못하는 끈끈한 정, 죽음 앞에서도 나타나는 천진난만함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따라서 김유정의 소설은 방금 뽑아 올린 흙 묻은 무처럼 싱싱하다. 그의 소설에 사용된 어휘들 중에서 무려 611개가 현재까지 어느 국어사전에도 들어 있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그의 언어는 새롭고 신선하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맸다. 그렇다 얼굴을 드니, 눈에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지 가랑이를 콱 웅키고 잡아나꿨다.(김유정, 부분)
한 해 동안 애를 조리며 훗자식 모양으로 알뜰이 가꾸든 그 벼를 거더드림은 기쁨에 틀림업섯다. 그러나 캄캄하도록 털고 나서 지주에게 도지를 제하고, 장리쌀을 제하고 보니 남는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 땀이 잇슬 따름. 그것은 슬프다 하니보다 끗업시 부끄러왓다. 가치 털어주는 동무들이 뻔히 보고 섯는데 빈 지게로 덜렁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건 진정 열쩍기 짝이 업는 노릇이엇다.(김유정, 부분)
그냥 읽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묘하게도 슬프다. 웃음과 눈물. 아니, 웃음 속에 숨쉬는 눈물. 눈물 속에서 피어오르는 미소. 김유정은 이런 언어적 표현을 통해 식민지시대 농촌에서 아무런 탈출구도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농민들의 참상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따라지 인생인 농민에게 그 현실을 부정하는 방법은 결국 풍자와 해학뿐이다. 따라서 김유정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웃음에는 짙은 눈물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김유정은 1937년 3월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했다. 젊은 작가의 요절은 슬프면서도 앙금이 남는다. 그것은 그의 작품과 죽음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유정은 죽기 전 삼 년 동안 폐결핵을 심하게 앓던 상태에서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채만식은 이때의 김유정을 '사백 자 원고지 한 장에 오십 전의 원고료를 바라고 그는 피 섞인 침을 뱉어가면서 써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받은 원고료를 가지고 그는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유정은 죽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사람이 밥을 먹은 것이냐? 밥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지.'라고 했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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