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통합교과논술 글읽기와 글쓰기)셋째마당:제시문 읽기

"글읽기는 작가 의도 파악해가는 과정"

논술고사는 제한된 시간에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제시문의 핵심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때로는 제시문이 길거나 여럿인 경우들이 있고, 더구나 익숙하지 않고 난해한 개념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제시문 전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파악이 잘 안 되는 부분에 얽매여 시간을 보내다 보면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각 단락별로 대체적인 중심 내용을 파악하는 정도로도 논제에 대한 글을 쓰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기본적으로는 세밀한 부분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제시문 독해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에는 제시문 자체에 대한 개별적인 독해보다는 논제 분석에서 파악한 내용에 맞추어서 제시문을 읽고 정리할 필요도 있다. 앞으로 4회에 걸쳐 분석하는 과정은 단지 대입논술고사를 위한 제시문 읽기가 아니다. 모든 글읽기를 위한 전략적인 방법이다. 전략적 글읽기의 과정은 '표면적 구조와 개략 읽기 → 단락 간의 이면적 구조 읽기 → 기본적인 의미 찾기 → 궁극적인 의미 찾기'로 이루어진다. 글쓰기와 글읽기는 모두 전략적인 작업이다. 결국 글읽기는 작가의 글쓰기 전략을 독자가 파악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제시문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중의 한 대목이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44세 되던 1780년(정조 4년) 5월 25일 청고종의 고희 축하 사절단의 일원으로 북경과 열하를 여행하고 10월 27일 돌아오기까지의 체험을 적은 일기 형식의 여행기이다. 그러나 단순한 여행기와는 달리 여정이나 견문만이 아닌 사상적 논설, 시화와 잡록, 문서나 서적으로부터의 인용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즉, 주요 여정은 일기체로 서술하되 이에 포함시키기 힘든 중요 사항들은 기(記)나 론(論), 설(說)의 형식으로 독립시켜 해당 편의 부록화함으로써 기사체식 방식을 곁들이고 있다.

전략적 글읽기에서 다루고자하는 글인 은 조에 포함되어 있다. 은 7월 15일 신묘일에서 23일 기해일에 이르기까지 9일 동안의 여행기를 담고 있다. 서문을 필두로 하여 신묘일기, 북진묘기, 거제, 희대, 시사, 점사, 교량, 임진일기, 계사일기, 갑오일기, 을미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무술일기, 기해일기, 강녀묘기, 장대기, 산해관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은 그 중에서 첫째 날인 7월 15일 신묘일기에 실려 있다. 『열하일기』는 여행기이다. 여행기의 주요 요소가 여정과 견문, 감상이라면 그것은 모두 '장관'에 대한 견문과 감상일 것이다. 넓은 요동에서부터 북경을 거쳐 황제가 기거하는 열하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관에 대한 기록이 바로 『열하일기』이다. 『열하일기』라는 저술의 성격상 은 이 저술의 서론에 해당되는 것이며 『열하일기』의 저술 태도와 여행 전반에 대한 필자의 관점이 피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지원의 글쓰기는 대단히 전략적이다. 당연히 글읽기도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자료 전문은 분량이 많기 때문에 인터넷 대구매일신문(http://imaeil.com)과 대구통합교과논술중심카페(http://cafe.naver.com/tgnonsul.cafe)에 탑재한다.

· 첫째 과정 : 표면적 구조와 개략 읽기

전략적 글읽기의 첫째 과정은 제시문의 표면적 구조와 개략 읽기이다. 글의 전체적인 짜임을 개략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이다. 의 첫 부분인 신묘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가) 가을 7월 15일, 신묘일, 개다. ~ 이 날은 매우 더웠다.

(나) 우리나라 사람이 연경으로부터 돌아온 사람을 처음 만나면 ~ 장관이다.

(다) 구광녕성은 의무려산 아래에 있다. ~ 광녕을 잃고 천하대세는 넘어가 버렸다.

(가)는 여행기의 일반적인 성격을 그대로 지닌 부분이다. 날짜와 날씨, 동행자들, 여정이 자세하게 나타나 여행기의 요건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30리, 40리라는 리수까지 기록할 만큼 치밀하다. 일반적인 여행기의 체제라면 이어서 그날 구경한 것들에 대한 느낌이 진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에서는 그러한 여행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갑자기 시작된다. 우리나라 선비들이 북경에서 돌아온 이를 처음 만나면 반드시 묻기를 "그대 이번 여행에서 제일 장관이 무엇이더냐? 그 제일 장관을 뽑아서 이야기 해 다오."라며 장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요동 들, 구요동 백탑...등의 장관이 제시되고 뒤이어 상사(上士), 중사(中士), 하사(下士)의 대답과 필자의 논평이 나타난다. 이 부분이 신묘일기의 80%를 차지한다.

그런데 (다)에 오면 다시 (가)의 서술로 되돌아간다. 즉, 구광녕성에 대한 표면적인 모습과 관제묘에 대한 진술, 구광녕성에 담긴 명의 패망에 대한 기억 등이 이야기된다. 이는 여행기의 일반적인 진술 그대로이다.

전략적 글읽기의 핵심 대상은 (나)부분인 이다. 은 여섯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경에 ~ 제일 장관이던 것을 뽑아서 이야기해 주시오.

(2) 사람들은 그 보는 바가 달라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 의견이 분분해서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3) 그런데 상사는 씁쓸한 기색을 지으면서 ~ 말하는 사람도 묵연하고 듣는 사람들도 숙연해진다.

(4) 그리고 중사는 말하기를 ~ 백년을 하루같이 이어져 내려오니 참으로 장한 일이다.

(5) 그러나 존주(尊周)는 존주이고 이적(夷狄)은 이적이다. ~ 중국에 볼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 나는 하사다. ~ 운애 낀 숲의 기이함 등만이 장관이랄 것이 아니다.

(1)은 논제를 제시해주는 부분이다. 장관에 대하여 이야기해 달라는 물음이 제기되어 논의의 방향을 알려준다. (2)는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장관들이 제시된다. 요동의 넓은 들을 비롯하여 구요동 백탑, 연로의 시가와 점포, 계문의 내 낀 숲...등이 그것이다. (3)은 상사의 의견이 제시된 부분이다. 상사는 도무지 볼 것이 없다고 한다. 황제를 비롯하여 장군, 재상, 대신 같은 관원, 선비, 일반인 등도 머리를 깎았는데 한 번 머리를 깎으면 되놈이니 짐승 같은 되놈에게 무엇이 볼 게 있느냐 한다. (4)는 중사의 의견이다. 모든 것이 야만의 자취를 따랐으니 볼 만한 게 없다고 하면서 10만의 군사로 중원을 평정한 다음에야 장관이 있다 한다. (5)는 (3)과 (4)에 대한 반론이 제기된 부분이다. 즉, 존주는 스스로 존주이고 이적은 스스로 이적이라고 하면서 이적을 물리치려면 먼저 우리 인민을 이롭게 하여 저들을 이길 수 있게 한 연후에 장관이 없다고 하라 한다. (6)은 하사의 의견이 제시된 부분이다. 스스로 하사라고 하면서 기왓조각이나 똥덩이에 장관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정리한 단락의 의미와 단락 사이의 의미망을 파악하여 글의 본질에 접근하는 과정은 다음 단계이다.

『열하일기』, , 신묘일의 기록

(가) 개었다.

내원·태의 변관해·주부 조달동과 함께 새벽에 소흑산을 떠나 30리를 가 중안포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먼저 떠나 구광녕을 거쳐 북진묘를 구경하고는 달빛을 타고 40리를 가서 신광녕에서 묵었다. 북진묘를 왕복하노라고 20리를 돌았을 것이니 합치면 90리 길이다. 정리록에 기록되어 있는 백대자·망우대·사하자·글가둔·삼의묘·북진보·양장하·우가둔·후가둔·이대자·소고가자·대고가자 등의 지명과 리수가 서로 어긋나는 것이 많다. 만약 그대로 계산하면 180리는 되겠는데, 이제는 상고할 길이 없다. 이 날은 몹시 더웠다.

(나) (1) 우리 나라 사람들이 연경에 갔다가 돌아오는 이를 만나면 반드시 '당신이 가 본 것 중에서 무엇이 제일 장관입디까? 제일 장관이던 것을 뽑아서 이야기해 주시오'하고 묻게 되는데,

(2) 사람들은 그 보는 바가 각각 달라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요동의 천 리 넓은 들이 장관입디다.' '구요동의 백탑이 장관이더군요.' '연로의 가게들이 장관이지요'하는가 하면 '계문의 운애 낀 숲이 장관입니다.' '노구교가 장관이던데요.' '산해관이 장관이랍니다.'하고 '각산사가 장관입디다.' '망해정이 장관이더군요.' '조가패루가 장관이지요' 하기도 하고 '유리창이 장관입디다.' '통주의 선박들이 장관이던데요.' '금주위 목축이 장관이랍니다' 하는가 하면 '서산의 누대가 장관입디다.' '네 천주장이 장관이던데요' '호권이 장관이랍니다'하고 '상방이 장관입디다.' '남해자가 장관이더군요.' '동악묘가 장관이지요.' '북진묘가 장관이지요' 하기도 하여 의견이 분분해서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3) 그런데 상사(上士)는 씁쓸한 기색을 지으면서 '도무지 볼 만한 것이 없읍디다'한다. '어찌하여 도무지 볼 만한 것이 없다는 겁니까?'하고 물으면 '황제도 머리를 깎았고, 장상·대신과 모든 관원들도 머리를 깎았으며, 선비·서민들도 모두 머리를 깎았습니다. 비록 공덕이 은·주와 같고 부강이 진·한에 지난다 하더라도 백성이 있어 온 이래 아직 머리 깎은 천자는 없었습니다. 비록 육농기·이 광지의 학문과, 위회·왕완·왕사징의 문장과, 고염무·주이존의 박식이 있다 하더라도, 한번 머리를 깎으면 곧 오랑캐요, 오랑캐이면 개돼지이니, 우리가 그 개돼지에게 무엇이 볼 것이 있겠습니까?'한다. 이것은 연경 다녀오는 사람들 중 가장 으뜸가는 바른 도덕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말하는 사람도 묵연하고 듣는 사람들도 숙연해진다.

(4) 그리고 중사(中士)는 말하기를 '성곽은 만리장성의 나머지요, 궁실은 아방궁의 유물입니다. 선비나 서인은 위·진 때의 부화를 따르고 풍속은 대업·천보 때의 사치를 본받은 것입니다. 신성한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산천이 비린내 나는 고장으로 변하였으며 성인의 업적이 묻혀 버려 말이 오랑캐의 것으로 변하였으니 볼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진실로 10만의 군사를 얻을 수 있다면 산해관 안으로 달려 들어가 중원을 깨끗이 소탕한 뒤에야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한다. 이것은 춘추를 잘 읽어 본 사람이라 하겠다. 이 춘추란 책은 중국을 높이고 이적을 배척한 글이다. 우리 나라가 명나라를 2백여 년 동안 섬겨 충성이 한결같아서, 비록 속국이라 일컬었으나 한 나라와 다름이 없어 임진년 왜노의 난리에 신종황제는 천하의 군사를 들어 구원해 주었으니, 우리 나라 백성의 발끝에서 머리털까지 재생의 은혜를 입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또 병자년에 청나라 군사가 쳐들어오자 열 황제는 우리 나라가 병란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총병 진홍범에게 명하여 각 진의 수군을 징발해서 구원하게 하였다. 진홍범이 막 관병의 충해를 아뢰는데, 산동순무 안계조가 조선이 이미 무너져 강화가 함락되었다고 보고하여, 황제는 조서를 내려 안계조가 협력하여 구원하지 못했음을 준절히 꾸짖었다. 이 때 천자는 안으로 복주·초주·양주·당주의 위급을 구원하지 못하고 밖으로 속국의 근심과 환난이 절박하여 수회에서 구원해 줄 뜻이 형제의 나라보다 더 간절하였으나 어찌하지 못하여, 마침내 사해가 무너지는 비운을 당하고 천하의 백성들이 머리를 깎아 모조리 되놈이 되어버렸다. 한쪽 귀퉁이에 있는 우리 나라는 비록 그러한 치욕은 면했으나 중국을 위해 원수를 갚아 치욕을 씻으려는 마음이야 어찌 하루이틀에 잊혀질 것이랴. 우리 나라 사대부로 춘추(春秋)의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이론을 내세우는 사람이 백 년을 하루같이 이어져 내려오니 참으로 장한 일이다.

(5) 그러나 존주(尊周)는 존주이고 이적(夷狄)은 이적이다. 중국의 성곽이나 궁실이나 백성은 진실로 예런듯 그대로 있고,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의 기물도 진실로 예런듯 다르지 않으며, 최·노·왕·사 등의 씨족도 진실로 예런듯 없어지지 않았고, 주·장·정·주의 학문도 진실로 예런듯 사라지지 않았으며, 삼대 이래의 성제·명왕과 한·당·송·명의 좋은 법과 아름다운 제도도 진실로 예런듯 변하지 않았다. 저들은 이적 일망정 참으로 중국의 모든 문물 제도가 이로워서 오래 누릴 만한 것임을 알고, 빼앗아 차지한 것을 마치 자기네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처럼 여기고 있다. 천하를 위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보탬이 될 일이라면 비록 그 법이 이적에게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취하여 본받아야 할 것인데, 하물며 삼대 이래의 성제·명왕과 한·당·송·명에 본래부터 있어 온 것이랴. 성인이 지은 춘추는 진실로 중국을 높이고 이적을 물리칠 것을 말하였지마는 그렇다고 이적이 중국을 어지럽힘을 분히 여겨서 중국의 가히 숭배할 진실 그것마저 물리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사람들이 참으로 이적을 물리치려 한다면 중국이 끼쳐 놓은 법을 모두 배워서 먼저 우리의 유치하고 어리석은 습속을 고쳐서 농사짓고 누에 치고, 그릇 굽고, 쇠 불리기에서부터 공업에 능통하고 상업에 밝도록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남이 열을 하면 나는 백을 하여, 먼저 우리 백성들도 하여금 회초리를 들어 저들의 굳은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매질할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중국에 볼 만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 나는 하사(下士)다. 나는 장관은 기왓조각에 있고 장관은 똥덩이에 있다고 말하겠다. 기왓조각은 천하 어디서나 버리는 물건이지마는 민가에서 담을 쌓을 때 담 높이가 어깨 위로 올라가면 그 위에 다시 기왓조각을 둘씩 벌려 놓아 물결무늬를 만들기도 하고, 네 개씩 합하여 고리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네 개씩 등을 맞대면 옛날 노전의 구멍처럼 되어 영롱한 빛이 안팎으로 비쳐, 버리지 않은 기왓조각이 여기에 천하의 무늬를 이룬다. 또 민가에서 가난하여 뜰에 벽돌을 깔 수 없으면, 여러 가지 빛깔의 유리 조각과 냇가의 둥근 조약돌을 주워다가 깎아 꽃·나무·새·짐승 모양을 만들어 진흙탕이 되는 것을 막아, 버리지 않은 유리 조각과 조약돌이 여기에 천하의 그림을 이룬다. 똥덩이는 지극히 더러운 것이지마는 그것을 밭에 내기 위해 금처럼 아끼고, 길에는 버린 재가 없으며, 말똥을 줍는 사람이 삼태기를 가지고 말의 뒤를 따라 다닌다. 똥덩이를 쌓아 놓는 방법도 네모 반듯하게 쌓기도 하고, 혹은 여덟 모 혹은 여섯 모로 쌓거나 혹은 누대 모양으로 쌓아서 똥덩이를 보아 여기에 천하의 제도가 세워진다. 그러므로 나는 기왓조각·똥덩이가 모두 장관이요, 꼭 성지·궁실·누대·시포·사찰·목축이나 들판의 넓음, 운애 낀 숲의 기이함 등만이 장관이랄 것이 아니다.

(다) 구광녕성은 의무려산 아래 있는데, 앞에는 큰 평야가 펼쳐져 있고, 수로를 만들어 강물을 끌어다 댄다. 탑 둘이 공중에 솟아 있다. 성까지 몇 마장을 채 못 가서 큰 묘당이 있는데, 단청을 새로 하여 눈이 부시다. 광녕성 동문 밖 다리 머리에 새긴 공하가 매우 크고도 기묘하다. 겹문을 들어가 거리로 나서니, 그 번화하기가 요동만 못하지 않다. 영원백이 성량의 패루가 성 북쪽에 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광녕은 기자의 나라로서 옛날에는 기자의 후관 쓴 소상이 있었는데, 가정 때 병화에 불타버렸다'고 한다. 성은 두 겹으로 되었는데, 내성은 온전하고 외성은 많이 허물어졌다. 성 안의 집집에서 남녀가 몰려나와 구경하고 거리의 일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무리를 지어 말머리에 둘러서서 말이 나아가지를 못한다. 성 밖의 관왕묘는 장엄하고도 화려하여, 요양의 관왕묘와 비슷하다. 문 밖에는 희대가 있어 높고 깊고도 화려하다. 마침 많은 사람이 구경하고 있는데, 갈 길이 바빠 구경할 수가 없다. 명나라 천제 때 왕 화정이 이 영방에게 속아서 그의 효장 손 득공이 적군을 성 안으로 맞아들여 광녕성이 함락하여 천하의 대세가 기울어졌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