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Crying For Burma

중장년층 이상이면 대개 '버마'로 기억하는 나라 미얀마는 우리와 닮은 근세사를 살았다. 우리가 외세에 부대끼기 시작할 즈음이던 1885년에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조선이 일본 손아귀에 들어간 뒤 그곳 또한 그 군대의 점령지가 됐다. 2차 대전 후 우리가 미군정 지배를 받을 때 그들은 다시 영국에 예속됐다. 1948년 우리가 새 나라를 출범시킬 때 그들도 독립했다. 우리가 1961년 쿠데타를 겪자 미얀마 역시 이듬해에 그 길을 따랐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미얀마는 우리가 넘보기 힘든 소득 높은 나라였다. 인구는 남한과 비슷한데 영토는 한반도 전체의 3배나 됐다. 우리 서민들이 쌀이라곤 구경도 못하고 살 때 이미 아시아 최대의 쌀 수출국이었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지금까지도 석유'가스'보석만 팔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자원이 풍부하다. 한국이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다고 들떴던 게 2006년 말이었으나, 미얀마의 우탄트는 1961년에 이미 그 자리를 맡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후 국민소득을 2만 달러 이상으로 높였지만 미얀마는 지금도 200달러 수준에서 게걸음 중이다. 우리는 1987년에 군사독재를 청산했으나 그들은 그 이듬해 일어난 '8888운동'을 실패로 마감했다. 우리는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은 군부를 7년 뒤의 6월 항쟁으로 극복해냈지만, 그들은 1988년 '양곤의 봄' 때 3천 명의 피만 뿌린 채 다시 겨울로 돌아갔다.

미얀마 민중이 20여 년 만에 다시 횃불을 들었다. 하지만 또 가망 없어 보인다. 국내적으로는 군부의 잔학성이 不堪當(불감당) 수준이고, 국제적으로는 실효성 있는 도움의 손길이 期待難(기대난)이다. 미국과 유럽이 민중 편을 들어도 중국'러시아'인도, 그리고 다국적기업들이 어깃장을 놔 효과가 없다. 미얀마야 망하든 말든, 그 민중이야 죽든 말든, 제 이익만 좇아 흔쾌히 군부의 돈줄이 돼 주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한 퍼스트 레이디는 서른셋에 숨을 거두면서도 '나를 위해 울지 말라'고 극중에서 노래한다. 하지만 미얀마를 향해 우리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민중의 절망감이 너무도 처연한 때문이다. 이해관계에나 강할 뿐 시비정의에는 약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원죄, 그 탓에 이 濁世(탁세) 속 우리들 삶 또한 미얀마 민중처럼 서러워서도 그렇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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