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지를 찾아서] 인디언 성지①-美 애리조나주 세도나

대지처럼 붉은 원주민, 영생의 에너지를 호흡하다

명상인들의 성지(聖地)이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신성히 여긴 땅으로 널리 알려진 세도나(Sedona)에 가기 전에 그랜드 캐니언부터 잠시 들렀다. 스페인 사람들이 그랜드 캐니언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란데!'(grande)라고 외쳤다던가. 자연의 광활함 앞에 왜소한 인간의 모습을 확인하는데는 단 1초의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세도나는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에서 자동차로 2시간여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신은 그랜드 캐니언을 만들었지만 신이 사는 곳은 세도나"라는 말로 설명되는 곳. 그곳 땅의 색깔처럼 붉은 피부를 가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피 흘려 지키려 했던 성스러운 땅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성지 세도나

경치 좋은 89a 도로를 따라 구절양장 굽은 길을 타고 얼마쯤 달렸을까. 푸른 하늘을 등에 인 붉은 산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심결에 카메라부터 빼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도나를 처음 찾는 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는 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아마 잠을 자는 중일 것이다.' 세도나 안내 책자의 첫머리에 쓰여진 글은 괜한 수사(修辭)가 아니었다. 그랜드 캐니언이 사람 주눅들게 하는 위용을 지녔다면, 세도나는 어머니 품처럼 포근히 껴안는 온화함을 지녔다.

세도나가 속해 있는 애리조나(Arizona)는 인디언말로 '샘'이라는 뜻이다. 세도나는 애리조나의 샘이다. 척박한 사막, 바위 땅이 대부분인 애리조나주의 다른 곳과 달리, 세도나엔 물이 흘렀고 숲이 산 허리를 감쌌다.

나바호, 아파치, 야바파이 등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예로부터 이 땅을 성지로 여겼다. 그들은 세도나가 영생을 주는 지구의 에너지가 나오는 땅이라고 믿었다. 일부 비밀스런 지역은 신과 직면하려는 사람 말고는 밟지 못하는 신성스런 구역이었다. 수백 년 전 나바호 원주민들은 세도나에서 성스러운 의식을 치렀으며 다른 부족들은 요즘에도 그 의식을 이어가고 있다.

◆세도나, 신과 소통하는 곳

성스러운 땅을 백인들은 빼앗았다. 원주민들은 목숨 걸고 항전했다. 세도나의 브로큰 애로우(Broken Arrow)라는 얕은 바위 언덕에서 원주민들은 백인들에 대항해 마지막 전투를 벌였지만 몰살당했고, 살아남은 야바파이족과 아파치족은 그랜드 캐니언 일대로 내몰렸다.

인디언들이 떠난 신성한 땅에다 백인들은 세도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네덜란드 여인 세도나 쉬네블리(Sedona Shnebly)의 남편이 1902년 우체국을 설립한 것이 계기가 됐다.

1980년대 이후 세도나는 영성에 목마른 현대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곳에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볼텍스(Vortex) 때문이다. 볼텍스란 지구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신비한 에너지 소용돌이를 말한다. 전 세계에 21개의 볼텍스가 있는데 그 중 4개가 세도나에 있다는 것이다.

세도나의 신비로운 볼텍스와 풍광은 영성과 영감을 갈구하는 명상인·예술가들을 그러모았다. 은퇴한 부자들도 많이 몰려들었다. 1900년대 초 200명에 불과했던 세도나의 인구는 이제 1만 5천 명으로 늘었으며,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붉은 바위 부근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빠진 사람, 인디언이 치렀던 비밀스런 신비 의식을 체험하려는 사람들을 세도나에서는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명상 중에 전생을 보았다는 사람과 UFO를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세도나에서 만난 에일린 마르티네즈(53·여) 씨는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어떤 에너지를 느낀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에너지다. 볼텍스 지점인 산과 바위에서는 더 강한 에너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세도나의 빛

세도나에서 볼텍스 에너지가 가장 강렬하다는 벨록(Bell Rock)에서 기자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찌릿찌릿한 기운을 느낀다는 일행도 있었지만 취재에 대한 부담 때문일까. 쉽게 집중하지 못했다.

성지(聖地)는 사람들이 신성시 여기는 땅이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이 신과의 소통을 시도했으며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세도나야말로 성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세도나에서 하룻밤 묵은 뒤 일출을 보려고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역광 때문에 검은 실루엣을 드리운 능선 위로 떠오른 순결한 빛 줄기를 보았다. 빛을 받은 세도나의 산과 땅이 붉게 타올랐다.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이던가. 그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문득 한 줄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지구 그 자체가 성스럽지 아니한가. 세도나는 그것을 전해 주려는 듯했다.

미국 세도나에서 글·사진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 파노라마 사진으로 담은 세도나 전경.

★볼텍스(Vortex)란

볼텍스란 유체 속의 소용돌이를 일컫는 수학 용어. 뉴에이지 운동을 하고 있는 페이지 브라이언트(56·여)가 1980년 처음으로 세도나에 볼텍스가 있다고 주장한 이래, 많은 명상인들은 세도나에 볼텍스가 소용돌이치며 분출되는 지점이 4군데 있다고 믿는다. 볼텍스에서 분출되는 에너지장은 인체의 자연 치유력 및 영성을 높인다고 한다. 세도나에 있는 4개의 볼텍스는 벨록(Bell Rock), 성당 바위(Catheral Rock), 에어포트 메사(Airport Mesa), 보인튼 캐니언(Boynton Canyon)이다. 단월드 측은 일지명상센터가 있는 마고가든(Mago Garden)에도 5번째 볼텍스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 세도나 이모저모

▷위치 : 미국 애리조나주 야바파이 카운티

▷면적 : 48.2㎢

▷평균 고도 : 해발 1,319m

▷가는 길(자동차 기준)

로스엔젤레스→세도나 : 8시간

피닉스→세도나 : 2시간

플래그스태프→세도나 : 50분

▷주요 관광 포인트 : 지구의 기(氣)가 뿜어져 나온다는 4개 볼텍스, 홀리 크로스 채플, 슬라이드 록 주립공원, 미술 갤러리 거리, 마고가든 일지명상센터

▷도보 트레일·지프·헬기·애드벌룬 투어 있음.

▷공식 웹사이트 : www.sedonaaz.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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