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금이정의 독서일기]보이지 않는 가슴/ 낸시 폴브레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작은 액수의 돈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를 창안하여 방글라데시의 수많은 빈민들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사람이다. 모든 체제와 논리가 '효율'과 '이익'이라는 바퀴로 굴러가는 시대에 그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도 사람들이 얼마든지 조화롭게 살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지난달 서울에서 창립한 세계여성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50%만 완성된 이론입니다. 이윤추구라는 인간의 탐욕에만 주목하고 있죠. 자본주의에선 우리 모두에게 이윤극대화라는 일종의 임무가 부과돼요. 효율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는 오늘날 자본주의 메커니즘은 사람의 눈에 이익만 보이게 하죠.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은 이익의 극대화가 곧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거예요. 이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람에게는 부자가 되고 싶은 본성만큼이나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본성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의 탐욕에만 주목하고 있어서 결함이 많다는 것이다. 나눔과 돌봄의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소외된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을, 어려운 사람들의 손에 자활의 도구를 쥐어 줄 수 있는 '인간적인 가슴과 손'을 가진 자본주의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책도 마침 '이기적 경제'에서 '돌봄 경제'로의 전환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경쟁 시장에 존재하는 수요와 공급의 힘을 뜻한다. 보이지 않는 가슴은 사랑, 의무, 호혜 같은 가족 가치를 뜻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성취에 관한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 가슴은 돌봄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가슴'에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있다.

갈수록 격화되는 생존경쟁은 가정에서의 '돌봄 노동'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일, 공공선을 위해 아무런 대가없이 하는 일 등 이타적인 노동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경제가 거칠게 굴러갈수록 사회의 윤활유인 이타심은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갈수록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가족을 파괴하고 극단적인 이윤추구가 공동체를 파괴하며 '선한 사람이 바보'가 되고 '좋은 나라가 경쟁에서 꼴찌'가 되는 세상이 된다. 이기심이 승리하면 할수록 사회의 복지정책은 약화되고 사회 안전망과 관계망은 빠르게 무너져 내린다. 더구나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학적 변화가 몰고 온 수많은 난제들까지 우리 앞에 던져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랑, 의무, 호혜라는 가족 가치를 국가적 가치로 확대하자고 제의한다. 국가도 의무와 책임뿐 아니라 돌봄과 나눔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쪽 면만 보도록 설계된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제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듯 국가도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이 '당연'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부모 없는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경제의 세계화라는 '날뛰는 망아지'의 고삐를 움켜잡고 그것을 제어할 민주적인 안전장치도 거의 없다. 돌봄의 책임을 평등하게 공유하고 분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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