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를 떠올리면 괜시리 구비구비 휘감기는 노랫자락 하나가 터져나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입안을 휘감는 남도의 깊은 맛, '땅끝'이라는 지명이 주는 알수 없는 아렷한 기분까지 어우러져 한가로운 유유자적한 기분에 흠뻑 빠져들 수 있게 하는 곳.
대구에서 고흥반도까지는 5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길이지만 우리 땅의 새로운 매력에 흠뻑빠져볼 수 있는 매력있는 여행지다. 좁은 반도 안에 볼거리도 널렸다. 두륜산 대흥사와 달마산 미황사를 비롯해 고산 윤선도 선생이 머물렀던 녹우당 고택과 우황리 공룡화석지 등 입맛대로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수 있다.
◇ 땅끝마을
광주에서 13번 국도를 따라 2시간 가량 달리면 남도 끝자락에 위치한 해남 땅 깊숙한 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국도 오른편으로 제법 아담하게 내려앉은 해남읍 시가지를 뒤로 한 채 다시 한참을 달려 77번 국도로 접어들면 비릿한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겨오며 남해가 가까왔음을 알린다. 늦은 밤 도착한 땅끝 마을은 '마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휘황찬란하다. 식당과 숙박업소를 알리는 네온사인이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알 수 없을만치 깊게 내려앉은 어둠을 배경으로 유난히 반짝인다.
여장을 풀고 여관 주인에게 다소 늦은 저녁을 해결할 곳을 묻자 "저어짝으로 가보쇼. 전복 해물탕 끝내주게 하는 집이 있응께."라며 길을 알려준다. 늦은 시각이지만 '갈매기 둥지' 식당 안은 저녁을 먹는 손님과 얼큰한 해물 안주에 소주 한 잔 걸치는 손님들로 제법 북적였다. 전복 해물탕 대신 선택한 산낙지 볶음은 흔히 여행지에서 뜨내기 손님을 상대로 파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음식과는 차원이 달랐다. 철판 위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싱싱한 산낙지는 피로 회복은 물론이거니와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
이튿날 연무가 가득한 땅끝마을은 호젓한 분위기라기보다는 전형적인 관광지라는 인상을 풍긴다. 보길도로 떠나는 여객선 고동소리의 여운을 뒤로 한 채 마을 뒷편에 자리한 사자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자봉은 남도를 숨차게 꿰뚫고 지나가던 소백산맥이 두륜산에서 마지막 한 번 기지개를 켠 뒤 땅끝에 다다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만든 갈두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몇 해 전 만들어진 모노레일이 사자봉 정상에 설치된 전망대까지 안내한다. 주중인 탓에 손님은 서너명 밖에 없지만 여름 피서철, 12월 31일 해돋이 관광객이 쏟아질 때면 모노레일은 하루 2천~3천 명을 실어나른다. 리모콘을 들고 모노레일을 작동하던 직원은 "한창 손님들이 몰릴 때는 한두시간 기다렸다가 타는 것이 예사"라며 너스레를 떤다. 사자봉에서 바라본 풍경은 가히 한 폭의 풍경화. 오목하게 들여앉은 마을 앞쪽으로 선착장이 눈에 들어오고 그 밖으로는 넓디넓은 전복 양식장이 마치 바다에 펼쳐놓은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다.
◇ 백련사
해남에 볼 것이 어디 땅끝마을 뿐이랴. 하지만 먼 길을 달려 남도까지 온 김에 강진을 놓칠 수 없다싶어 다시 길에 올랐다. 동쪽으로 77번 국도를 따라가다 813번 지방도를 타고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꾼 뒤 다시 18번 국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알리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녹차하면 흔히 이웃한 보성을 떠올리지만 강진은 야생차로 유명한 곳이다. 오죽하면 이곳에서 10여년 유배생활을 했던 정약용의 호가 다산(茶山)일까.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온 이듬해 백련사를 찾아갔다가 주지였던 혜장선사를 만난다. 학문적으로 정신적으로 교류할 사람을 찾지 못하던 다산은 혜장을 만나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게 된다.
백련사를 찾아가는 길 가에는 동백이 무성하다. 초봄에 이 곳을 찾았더라면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을 마음껏 볼 수 있었으련만. 천연기념물 제151호인 동백은 함부로 캐거나 꽃을 따서도 안된다. 국도에서 벗어난 오르막길을 잠시 달리면 백련사에 다다른다. 사찰내에서 백련다원을 꾸리고 있는 장내순 씨는 "이곳의 차는 산에서 자생하는 야생차 잎을 봄에 채취한 뒤 스님들이 직접 덖어서 만들기 때문에 그 향과 맛이 다른 차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얻어마신 솔잎차도 긴 여운을 남긴다.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 곳에서 다산은 후학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후세에 길이 남을 저서가 쓰여졌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산책에 그만이라는 추천을 들었지만 초가을, 그것도 꽤나 무더운 날씨에 산길을 걸을 엄두가 나질 않아 '다산유물전시관'으로 차를 돌렸다. 좀 더 쉽게 다산초당을 눈에 넣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하지만 자기 꾀에 자신이 넘어가는 법. 다산유물전시관에서 다산초당까지 이르는 길도 거리와 경사가 만만치 않은 길이었다. 강진청자문화제가 열리는 기간동안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다산유물전시관을 잠시 들러본 후 '다산초당'이라고 적힌 푯말을 따라 발길을 옮겼지만 가도가도 좀체 초당의 그림자조차 나타나질 않았다.
다산초당 입구의 마을을 지나 개울물이 흐르는 산길을 따라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길 20여분.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나서야 산 중턱에 자리잡은 다산초당의 기와가 눈에 들어왔다.
이 곳에는 다산초당을 비롯해 동암과 서암 등 3개의 건물이 나란히 놓여있고, 초당과 동암 사이에는 작은 단아한 운치가 풍기는 연못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자니 "이런 곳이라면 나도 유배당하면 좋겠네."라는 감탄이 절로 터져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다산선생의 고충을 십분의 일조차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은 후세인의 마음일 뿐. 호수같은 강진만을 바라보고 있는 천일각에 앉아 멀리 흑산도로 유배간 둘째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며 귀향살이의 괴로움을 곱씹었을 그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다산초당을 찾으면 '다산 4경'을 빼놓지 말고 둘러봐야 한다. 초당 뒤쪽 다산선생이 직접 병풍바위에 '丁石'이라는 글자를 새긴 정석바위, 직접 수맥을 찾아 차를 끓였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이 그것이다.
◇남도 천일식당 '떡갈비한정식'
고흥반도에서 손꼽히는 음식점이다. 제대로 된 남도 한정식을 맛보고 싶다면 꼭 한번 들러봐야할 집. 얼마전에는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한국의 100대 음식점'에 들기도 했다.
한 곳에서 3대째 80년을 이어오고 있는 '천일식당'을 유명하게 만든것은 떡갈비한정식. 이 집의 떡갈비는 고기만 발라낸 소갈비를 잘게 다진 후 양념해 하루정도 숙성을 시켰다가 참나무 숯에 구워낸 것이다.
떡갈비와 함께 차려지는 상의 반찬 수만해도 27가지에 이른다. 토하젓, 어리굴젓, 돔베젓, 창란젓 등 대여섯가지의 젓갈류와 각종 계절 반찬들이 한상 가득 차려져 입맛을 유혹한다. 경상도 음식처럼 강한 양념의 맛은 이곳에서 느낄 수 없다. 짜지도 맵지도,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은 적당한 간이 입안을 감미롭게 휘감는 것이 바로 전라도 한정식의 매력. 오이소박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고추 속을 파 내고 양념을 넣어 숙성시킨 고추김치 역시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이다. 아삭아삭한 씹는 맛과 시원한 청량감이 어우러진다.
천일식당은 전남 해남군 읍내 매일시장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골목길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워낙 유명한 집이라 읍내에서 길을 물으면 누구나 친절하게 알려준다. 061)536-4001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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