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가을...'책 읽기'

생각해보면 '술친구'는 얼마나 많고 '책 친구'는 얼마나 드뭅니까? 그래서 술 한잔 함께 마실 친구는 많지만, 읽을 만한 책 한 권 추천해주는 친구는 드뭅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떻게 읽어야 할까, 에 까지 이르면 막막해집니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읽는 능력' 또한 다르니 책 읽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책의 장르는 광범위합니다. 여기서는 대중이 흔히 접하는 소설에 국한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매일 신문사 선배 기자들 중에는 "기자는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견 사실만 기록해야 하는 기자에게 '소설'은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다만, 이 말은 깊이 음미해 볼만합니다. 선배 기자들이 '기자는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소설가의 화려한 문체를 익혀 아름다운 문장을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소설을 통해 '밝은 눈'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시인의 눈'을 가지라는 것이지요. '보름달이 둥그네?'라는 말에 '보름달은 원래 둥근 거야.'라고 대답한다면 시인의 눈이 아닙니다. '시인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보름달은 그렇고 그런 물체에 불과합니다. 기자가 '시인의 눈'을 갖지 않으면 매사를 그렇고 그런 심드렁한 눈으로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비단 기자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해당합니다. 심드렁한 눈에는 달뿐만 아니라 인생도 그렇고 그런 '시간'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책 읽기와 관련해 전문가의 의견을 구해볼까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취재 경험으로 보아 '노골적'인 이야기를 해 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자의 개인적 체험을 '노골적'으로 전합니다. 개인적 체험을 일반적인 것이라고 우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비교적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의 경험담 정도로 여기고 독서에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 소설을 왜 읽을까.

'소설은 읽어도 남는 게 없더라.'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소설은 지식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장르가 아닙니다. 소설 속에도 잡다한 지식이 있지만 전문분야 서적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그래서 소설 한 권을 읽었다고 뚜렷하게 남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독자들께 '소설을 많이 읽으시라.'고 강권하고 싶습니다.

소설은 '누군가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인생의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견 무의미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소설책 한 권으로 인생의 정답을 이야기한다면 그야말로 '거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인가 있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정답'에 가까울 것입니다.

대체 우리가 '인생은 무엇이다.' 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너무 거창합니까? 그러면 인생의 한 부분인 사랑. '사랑은 무엇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독자들께서 앞으로 10년 동안 매일 한 개씩 '사랑은 ∼이다.'라고 정의 내려보십시오. 그래서 10년이 지난 어느 날 3천 650개의 정의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다시 한번 훑어보십시오. 그리고 과연 사랑은 무엇인지 진정한 결론 내려보십시오.

아마도 많은 분들은 '사랑은 사랑이다.'라는 다소 무책임하고, 뻔해 보이는 결론에 닿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동어반복이야말로 가장 포괄적이고, 깊이 있고, 분명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인생은 사과다.' 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말 대신 '사과'라는 말을 써야 합니다. 말하자면 '아이고 내 팔자야. 내 사과가 왜 이 모양이냐.'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인생은 인생이다.'는 말은 인생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의인 셈입니다.

소설 읽기는 '인생은 무엇이다.' 라고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틀린 정의'를 내려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인생은 무엇이다.'라고 틀린 정의를 내리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틀린 정의'를 내릴 줄 아는 사람은,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압니다. 누군가의 좋은 질문에 정확하게 답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 이것이 창조적인 상상력입니다. 매일신문사의 선배기자들이 후배 기자들에게 '기자는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좋은 질문을 던지는 훈련을 하라.'는 말입니다.

◇ 어떻게 읽을까

소설 한 권의 소득이 줄거리를 파악하고 한 개의 이야기를 아는 정도라면 좋은 독서가 아닙니다. 그런 정도를 원한다면 4, 5시간 이상을 들여 소설 책 한 권을 읽을 필요가 업습니다. 흔히 책 맨 끝에 나오는 줄거리를 읽으면 20분이면 차고 넘칩니다. 먼저 읽은 사람에게 줄거리를 들으면 5분이면 끝납니다.

소설 읽기의 가장 큰 목적은 '감동을 받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설 읽기의 목적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면'을 읽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이면을 읽는 연습은 '밝은 눈'을 갖게 해 줍니다. 소설 읽기의 목적이 '줄거리 파악'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감동 받은 영혼은 '일상의 영혼'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흔히 '일상인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랑에 빠진 그(그녀)는 감동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서적의 수명은 교과서의 수명과 비슷합니다. 중학생이 된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를 다시 읽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그러나 소설은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소설은 10년 후에도 줄거리나 배경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10년 후 다시 읽었을 때 느낌이 10년 전과 다른 경우는 많습니다. 읽는 내가 변하면 동일한 텍스트라도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많은 장르가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영화처럼 연출이 상당히 완성된 장르가 아니라 내 위치에 따라 연출이 변화무쌍한 장르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판본'으로 명작고전을 읽었다면 성인이 된 후 '원판'을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물론 모든 소설이 그럴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소설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비슷합니다.

소설가 김형경의 '사람풍경'이라는 심리 에세이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여러 사연과 그 상처를 풀어 가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 에세이를 읽을 때 갖가지 사연에 집중하는 것은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개개인의 사연들 중에 나와 상황이 비슷한 경우가 있으니까요. 더불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작가 김형경'을 보는 눈입니다. 갖가지 사람과 사연이 등장하지만 '사람풍경'은 결국 '김형경'이라는 사람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나를 찾으려는 노력'도 빼놓지 말아야 합니다. 김형경의 에세이를 통해 결국 우리가 '읽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전문가 김경이 쓴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유명인물 뿐만 아니라, 그 수많은 작자들을 찾아다닌 김경이란 여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훨씬 유익하고 재미있습니다.

모름지기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는 '생각을 단속할 게 아니라 제 마음대로 날뛰도록' 풀어놓아야 합니다. '교과서류의 책(전문서적)'을 읽을 때 차곡차곡 정리해 나가야 하는 것과 다른 방법입니다.

끝으로 소설은 천천히 읽어야 합니다. 소설은 줄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눈으로 읽는 게 아닙니다. 독자인 내가 등장인물이 서 있는 공간, 상황, 등장인물의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문득 책장을 덮고 눈을 들었을 때, 내가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좋은 경험을 하신 셈입니다. 모름지기 소설 읽기는 시공을 초월한 여행이어야 합니다. 빨리, 많이 읽었다고 상 줄 사람은 없습니다.

◇ 어떤 소설을 읽을까.

대구시내 각 도서관의 '독서토론 모임'에서 올해 읽었거나 읽기로 한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른바 책 읽기에 관심이 많다는 사람들이 선택한 책 대부분이 '유명서적'이었습니다. 각종 문학상을 받았거나, 유명한 작가가 썼거나, 잘 팔린다는 책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필독서로 올라와 있는 책들도 많았습니다.

사실 좋은 책을 고르기는 생각보다 힘듭니다. 추천해주는 사람도 드물고, 다 읽어보기 전까지는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 심지어 다 읽고 난 후에도 구분하기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내게는 좋은 책이 타인에게는 나쁜 책일 수도 있습니다.

△ 좋은 책은 내게 맞아야 합니다.=우연히 마음에 드는 작가를 찾았다면 그 작가의 이전 책을 모두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작가들마다 일정한 '자기수준'이 있고, 스타일이 있습니다. 물론 써내는 작품마다 마음에 들 수는 없으나 '나쁜 책'을 고를 위험부담은 상당히 줄어듭니다. 다소 노력을 기울여도 재미없고 부담스럽기만 한 책은 덮어야 합니다.

△ '책 친구'를 사귀십시오.=나와 통하는 친구 중에서 '책 친구'를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그 친구가 좋다는 책이라면 내 마음에도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 국내 작가의 책으로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문화와 언어, 생활습관과 배경이 다른 외국이 책은 많은 즐거움을 주지만, 이질감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책 앞쪽이나 뒤에 있는 작가의 짧은 '서문' 혹은 '후기'를 살펴보십시오.=작가가 책을 쓴 동기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짧은 내용이지만 '작가의 진정성' '나와의 소통 정도' '내 관심사와 일치성' 정도를 상당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신문'방송이 서평을 살펴보십시오.=짤막하게 소개된 책이 아니라 길게, 성의 있게 소개된 책이라면 서평을 쓴 기자가 '재미있게, 잘 읽었다.'는 말입니다. 줄거리가 아니라 기자의 개인적 감상이 포함된 서평일 경우 더욱 좋습니다. 소설이 아닌 다른 종류의 책일 경우, 신문에 크게 썼다고 좋은 책은 아닙니다. 내용과 무관하게 책 속에 그림이나 사진이 많은 책을 크게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문지면을 구성할 때 컬러 사진이 있으면 그럴듯해 보이니까요.

△ 충격적인 제목, 선정적인 카피=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요란한 제목은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삼국지'류를 쓴 작가의 신간=삼국지를 새로 펴내는 작가들의 출간변은 대체로 '시대가 변했고 삼국지는 재해석이 필요하다.'이지만 그들 중에 진정 삼국지를 재해석해내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들이 원전 삼국지를 다시 펴내는 것은 그만큼 창조적 상상력이 고갈됐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 작가가 펴낸 새 책이 좋은 책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물론 삼국지를 진정 '재해석'한 경우라면 예외이겠습니다. 삼국지뿐만 아니라 공자 맹자 등 원전을 '소설 형태로 재해석'한 책도 일단 차가운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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