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돈이 뭐길래

돈 앞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적게는 몇 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눈 앞에 굴러든 돈 때문에 신세를 망친 이들의 이야기는 최근 몇 년치만 모아도 대하소설을 능가할 정도다. 불교에서는 무욕(無慾)을 역설하고, 성경에서는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했다.

◇ 뭐니뭐니 해도 돈이 최고야(?)

얼마 전 술자리에 불려갔던 회사원 황모(35) 씨는 한동안 '더러운'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돈이 좋고, 돈 많은 친구가 좋다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는 선배의 소개로 함께 하게 된 술자리에는 40대 초반의 한 사업가도 있었다. 식사와 함께 반주 한두잔 기울일 때만 해도 그저 친구 좋아하고 돈 잘버는 사업가를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가관인 그의 돈 자랑. 얼마 전 샀다며 손목에서 금빛 찬란한 시계를 내둘러보이기도 했다. "2천 정도 줬어."라는 말과 함께. 옆자리 친구들은 마치 경쟁적으로 아부하듯 시계와 시계 소유자에 대한 칭송가를 불러댔다.

술자리는 무르익어 2차로 자리를 옮겼다. 취기가 오른 그 사업가는 마이크를 잡고 혼자서 노래를 불러댔다. 어처구니 없는 일은 그 때 벌어졌다. 담배를 피우던 친구에게 그는 갑자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야! 넌 왜 박수 안 쳐? 내 술 얻어먹기 싫어? 그럼 나가." 술판 분위기를 망쳤다고 생각한 것은 황 씨만의 착각이었다. 오히려 다른 친구들은 욕 먹은 친구에게 면박을 주며, "왜 분위기 깨? 담배는 노래 끝나고 피워." 욕 먹은 친구도 우스운 꼴이기는 마찬가지. 왜 욕을 하느냐며 대들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어, 미안. 내가 잘못했다. 담배 끌께. 미안."이라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 사업가는 탁자를 발로 차며 재떨이를 던지는 시늉까지 했다. 보다 못한 황 씨는 밖으로 나가 자기 선배에게 "이게 무슨 꼴이냐?"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그 선배는 "돈이 웬수다, 웬수야."라며 어깨만 두드렸다.

시어머니 용심도 돈이 없으면 말짱 헛일. 고졸인 최모(32) 씨는 연애로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만났다. 시댁의 결혼 반대가 만만치 않았지만 일찍 부모를 여읜 최 씨는 성심성의껏 시부모를 모시면 언젠가는 사랑받을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결혼 뒤 시어머니의 애정어린 말은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일년 정도 시집에서 모신 뒤 분가해 나왔지만 그렇다고 시집살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하루가 머다하고 시집에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고, 그 때마다 청소부터 음식 장만까지 모두 최씨 몫이었다. 주말이면 시집에 가는 것은 관례가 됐다.

얼마 전엔 시댁 이사 후 시어머니가 최 씨에게 집들이 음식 장만을 요구했다. 전날 부지런히 장을 봐 이튿날 새벽같이 시댁에 간 최 씨는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었다. 밤 늦게 설겆이까지 끝낸 뒤 돌아서는 최 씨를 불러세운 시어머니 왈, "음식이 대체 그게 뭐냐? 손님들 불러놓고 낯 뜨거워서 혼났다. 우리 집 수준을 뭘로 보고 이러는거냐? 상을 뒤엎으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서럽다 못해 분하고 원통했던 최 씨는 그날 밤 남편을 앞에 두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정 이야기를 했다. "미안하다. 네가 고생이 많다."라는 따뜻한 위로를 기대했건만 남편은 싸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좀 똑바로 하지. 왜 어머니 역정 나시게 해? 이 집도 시댁에서 장만해줬지, 다달이 생활비 몇 십만 원씩 보내주지, 돌아가시면 유산이 수십 억은 될텐데. 이 정도는 참아야지. 돈도 없으면서…." (뒷 얘기 한마디 더) 이런 최 씨의 사연을 듣고 돌아온 한 친구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유산 수십 억 있는 시부모 같으면 매일 발이라도 닦아드릴텐데."

◇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도 참 많더라

지역 한 백화점에서 지난해 고객별 매출액을 분석했다. 연간 수천만 원을 백화점에서 지출한 고객이 수두룩했다. 이 중 단연 매출액 1위를 기록한 고객이 쓴 돈은 얼마나 될까? 무려 2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 한 곳에서만 쓴 돈이 2억 원.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생각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라는 입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백화점 한 관계자는 "자사 카드만으로 연간 수천만 원을 결제하는 사람들이 적잖다."며 "다른 카드나 현금 사용액까지 포함하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소비력이지만 이들에 대한 정보는 백화점 1급 기밀에 속하기 때문에 더 이상 알 수 없다."고 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민경제일 뿐. 상류층과 서민층 소득격차는 이미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고, 나름 사는 형편이 괜찮다고 여기는 중산층 내에서도 소득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통계청의 '1'4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전국 가구를 소득별로 10개 분위로 나눴을 때 중상층(6~8분위)의 월평균소득은 중하층(3~5분위)의 1.662배로 관련통계가 만들어진 2003년 이후 최대 격차를 보였다. 같은 기간 8분위의 월평균소득은 올 1'4분기 423만 4천 원으로 4년 전보다 24.7% 늘어난 반면 3분위의 월평균 소득은 174만 3천 원으로 17.1% 증가에 그쳤다. 아파트 한 채, 중형차 한 대 갖고 있다고 해서 똑같은 중산층은 아니라는 뜻.

직장인 권재덕(39) 씨는 "맞벌이하면서 월 평균 500만~600만 원 정도를 버는데도 아이 둘 키우면서 부모님 용돈 드리고, 연금이며 보험 들고 나면 저축할 돈도 빠듯하다."며 "고급 승용차 몰면서 골프 치고 때때로 해외여행 나가고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얼마나 돈을 많이 벌길래 저럴 수 있는 지 궁금하다."고 했다.

의사 박모(42) 씨는 "개원하는데 은행 융자 3억 원을 냈는데 매달 이자만 300만 원 가까이 나가고, 간호사 월급 주고 건물 세까지 내고나면 손에 얼마를 쥐는 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라며 "의사가 매주 로또를 산다면 듣는 사람들이 모두 코웃음을 친다."고 했다. 공무원 정모(45) 씨는 "주위에 돈 많다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부동산이 많거나 물려받은 유산이 많은 경우"라며 "그네들을 존경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곁에 있다면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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