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하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등 말이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말은 결국 희극으로 끝나는 로맨스임을 그 이름에서 명명백백히 선언하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이뤄지지 않는 인연은 없다는 뜻이다. 어떤 식의 곤란을 겪는다 할 지라도, 로맨틱 코미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들은 결혼을 하든, 연인이 되든 둘 중 하나의 상태에서 관객에게 결별을 고한다. 그 이후의 연애, 결혼 생활이 어떻게 진행될 지는 몰라도 관객은 뿌듯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선다.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의 마지막 챕터명이 '둘만 잘 되면 만사형통'인 까닭도 아마 이 얄팍한 기대에 대한 조롱과 상통할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원조격이라면 '어젯밤에 생긴일' 등의 스크루볼 코미디라고 대답하는 것이 옳겠지만 내 생각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더 적합해 보인다. 한미한 집안의 딸들이 하나같이 명망있는 재산가의 상속남들과 결혼하는 '오만과 편견'이나 '센스 앤 센서빌러티'만 해도 그렇다. 실상,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19세기 영국에서는 노처녀들의 삶이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결혼하지 못한 여자들은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없었기에 20대 고스란히 부모의 짐이 되거나 형편없는 임금의 가정 교사로서 일생을 마쳐야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보면 대부분 낭만적 연애 끝에 결혼에 도달하지만, 당대 현실은 정반대였다. 결혼은 낭만보다 조건, 사랑보다 금전에 따라 결정되었고 연애는 그 이후의 문제였다. 낭만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19세기 영국의 결혼! 그런 이미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나타난 낭만적 연애 서사들은 현실이라기 보다 환상이자 꿈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오만과 편견', '센스 앤 더 센서빌러티'는 낭만적 연애 결혼의 꿈을 말랑말랑하게 직조해낸 격조있는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안 감독이 연출한 '센스 앤 더 센서빌러티'는 오스틴의 작품이 지닌 섬세한 매력을 싱그러운 사랑의 두근거림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격정적 사랑을 꿈꾸는 여동생과 봄 날 오후의 때늦은 비처럼 감정을 다스리는 언니의 사랑, 대조적 인물들의 연애담은 섬세한 뉘앙스와 오묘한 표현으로 넘실댄다. 사랑하는 연인을 부르며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외치는 여동생의 모습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잊혀지지 않는다.
한편,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인 워킹 타이틀사에서 만든 '오만과 편견'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리워하고, 의심하다, 결국 고백하고 마는 난해한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이를테면, 엘리자베스의 손을 스친 다아시의 떨림은 손가락을 쫙 펴는 클로즈업 된 다아시의 손가락의 긴장으로 묘사되고 다아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그리움은 우연히 그와 마주치게 된 엘리자베스의 흔들리는 검은 동공으로 표현된다.
사랑하는 여자의 집 안을 모욕하는 '오만'과 남자의 주변에 떠도는 험담을 무조건 믿어버린 '편견'으로 인해 먼 우회로를 거쳐야했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형편없는 재산과 단정치 못한 동생을 지닌 엘리자베스이지만 그녀의 교양과 재치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환상을 가능케 한다. 실제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혼할 수 없었던 제인 오스틴에게 있어 낭만적 사랑은 신화에 가까웠을 지도 모른다. 조건이나 재산을 무시한 순수한 결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러한 결말은 행복한 환상을 부추기기에 충분하다. 비록, 낭만적 사랑은 영화 속에서나 찾아 볼 수 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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