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빴다. 지역에서 손꼽히는 비디오 아티스트 하광석(37) 씨는 전에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8월 이후 '2007 올해의 청년작가초대전'으로 시작해 '아트 대구 페스티벌', '대구 국제 뉴미디어아트 페스티벌 2007', '8 큐브스(Cubes)', '2007 현대미술 영상&설치전'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진 전시회 때문이다. 이달에도 단체전 계획이 잡혀 있고, 개인전도 준비하고 있다.
그런 생활 속에 한 가지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봉산문화협회가 뽑은 제2회 봉산젊은작가상에 선정됐다는 것이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의 솔직한 느낌이다. 개인적인 영광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업화랑 중심 단체에서 미술 경향에 따르지 않고' 자신을 뽑아준 것이 '구상미술이 대구 미술의 다인 양하는 분위기에서 변화를 원하는 듯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2003년도나 현재도 영상작업에 대한 인식이나 작업 환경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 시점에서 하 씨는 '비디오 아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는 우리말로 '영상작업'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모니터를 이용하는 작업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잘라말한다. '비디오도 작업 매체의 하나일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영상이 당장 시선을 끌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비디오 아트의 다는 아니란 말이다.
그가 보기에 아직도 국내에서 비디오 아트는 '작품 속 내용 전달보다는 시각적·기술적 정보 전달에 한정'된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정보가 많아서 그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평론가나 작가 사이에 (비디오 아트의 본질이) 조금씩 정리되는 중"이라는 분석이다. 하 씨는 "유학 시절 초기 비디오 아티스트인 피터 캠퍼스로부터 이런 점을 배웠다."며 자신의 강의 시간에도 이를 강조한다고 밝혔다. 이런 점은 그가 최근 사진을 이용한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배경은 아무래도 자신이 걸어온 미술의 길을 짚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담임 선생(서양화가 장이규) 덕에 미술학원을 드나들 수 있었던 그는 고교 졸업 때까지 회화와 조소 등 다양한 작업을 배웠고, 대학에 가서는 동양화와 구성 쪽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디자인 분야도 경험하면서 다양한 장르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매체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게 된 이유이다. 비디오 작업을 시작한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라고 했다.
회화 작업을 하다 보니 자꾸 '누군가와 닮았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내 작품 속에 '나'는 없고 '누구'만 있단 생각에 '내가 존재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고 백남준 선생 이외에는 달리 작가가 없던 영상예술을 배워보자고 결심했단다. 그래서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좋은 학교를 찾다가 뉴욕대(NYU)를 찾았다.
학생 신분으로 타국살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그에게도 만만찮은 시간이었다. 대학 졸업하던 해에 부친의 교통 사고사로 잠시 유학 결심을 접었던 일, IMF 사태가 터져 부득불 일자리를 찾아야 했던 일, 학업과 부업을 병행하면서 주말만 되면 녹초가 됐던 일, 남들은 노는 주말·휴일에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작업해야 했던 일 등이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학기 중에는 은행돈을 융자해 생활하다 방학에 바짝 벌어 이를 상환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섬유 디자인 회사의 한인 2세 사장이 사업 제안을 해와 잠시 고민도 했었다는 하 씨는 "유학 초기의 목적을 되살려 결국 귀국길에 올랐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녹록지만은 않았다. 대학 강의를 나가며 작업을 계속해야만 한다. 작업에 대한 지원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 새로운 것을 잘 안 받아들이려는 지역의 성향은 더욱 힘들기만 하다. 그래도 미술은 포기하지 못할 대상이다.
하 씨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추구했던 백남준 선생을 존경한다."며 "항상 새로운 창조를 요구하는 미술에 맞게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질문하며 이를 풀어가는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은 "'영상작가'라기보다는 '아티스트'이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해 준 아내의 병 얘기에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그는 괜찮아질 거라면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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