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답답합니다. 그저 멀리서 지켜봐야만 하는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빨리 잘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군부의 유혈진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구의 미얀마 근로자들도 자국의 소식에 귀기울이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4일 오후 달서구 성서공단에서 만난 4명의 미얀마인들은 "버마로 부르든 미얀마로 부르든 상관없다."며 "하루빨리 사태가 진정돼 고국 부모 형제들이 피를 흘리지 않길 바란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1일 부산·경남지역의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40여 명이 부산역 광장에서 미얀마 민주화 지지와 군사정권 타도에 한국 국민이 힘을 보태줄 것을 호소하는 집회를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열었지만 대구에서는 이 같은 행사가 마련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집회나 기자회견에 선뜻 나서려는 미얀마인들이 거의 없기 때문.
대구에 거주하는 미얀마인은 146명. 이들은 'www.myanmarnet.co.uk'나 'Democratic Voice of Burma' 등 해외에 서버를 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자국 소식을 접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언론 검열이 심해 미얀마 소식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곳은 해외에 서버를 둔 온라인매체뿐이다.
A씨(33)는 "언론 검열은 약과"라며 "미얀마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가 걱정돼 전화를 하다가도 유혈 진압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전화가 끊겨버릴 정도로 감시가 심하다."고 털어놨다. A씨는 말을 하면서도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B씨(32)는 미얀마 군부의 무력 진압으로 2천여 명이 숨진 1988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도 뉴스에는 안 나왔지만 수많은 국민이 군인들이 쏜 총에 숨졌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슬픕니다." 죽은 스님의 시신이 물 위에 떠있는 사진을 웹사이트를 통해 보던 B씨는 한숨만 내쉬었다.
C씨(26)도 가족 걱정으로 표정이 어두웠다. 오후 9시가 되면 전화 통화가 불가능해 걱정만 더 늘었다고 했다. "스님들을 상대로 진압에 나섰다지만 닥치는 대로 잡아가는 것 같던데 혹시라도 가족들이 휘말리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지난주에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를 했는데 빨리 사태가 진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은 46년간 군부의 통치가 이어지면서 국운도 점점 기울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군부의 극심한 감시와 통제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이들은 군부가 무너질 가능성이 보이기만 한다면 집회에 나서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도 1988년처럼 국민들만 피를 흘린 채 끝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금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스님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판국에 언젠가는 미얀마로 돌아갈 우리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들의 떨군 고개 아래로 한숨이 새나오고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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